美·英 WMD 정보 부족했나, 왜곡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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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미국과 영국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된 데는 '기본적인 정보 부족'과 '정보 왜곡'이 작용했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전개 과정=미 국가정보위원회(NIC)는 전쟁 몇개월 전인 2002년 10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이라크가 적게는 1백t에서 최고 5백t에 이르는 화학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 대부분이 2001년 보태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이 영국과 더불어 이라크에 전쟁을 선포한 큰 이유 중의 하나로 작용했다.

전쟁 명분을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은 2003년 3월 20일 개전 이후 3천여명으로 이뤄진 이라크 서베이 그룹(ISG)을 동원해 이라크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대량살상무기 제조.보유에 대한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

그러자 지난해 10월만 해도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얻으려고 계속 시도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말했던 데이비드 케이 ISG 초대 단장은 지난달 25일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대량살상무기 수색의 최고 책임자였던 인물이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부인한 것이다.

◇정보기관이 문제=파이낸셜 타임스는 3일 "미국.영국의 정보당국이 ▶정보 제공자 부족에 따른 정보 공백▶이라크 망명자에 대한 지나친 의존▶우방의 정보에 대한 과도한 신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잘못된 정보를 생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1992년 걸프전 이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수색을 위해 구성된 유엔무기사찰단(UNSCOM)이 98년 이라크에서 철수한 뒤 지난해 개전 때까지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정보는 사실상 공백상태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해외정보국(MI6) 등은 사찰단이 입수한 정보에 크게 의존해 왔는데 사찰단의 철수로 이라크에 대한 정보 파이프가 막힌 것이다.

또 미국은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자치지구에 95년부터 정보요원을 파견해 이라크 망명자 등에게서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입수했다. 하지만 정보 제공자들은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과장했으며, 이라크 내부에 고위 정보원을 확보하지 못한 미국은 이를 확인할 수 없었고 따라서 정보를 제대로 분석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정치적 압력 여부=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정보가 부정확했던 이유가 백악관의 압력에 따른 왜곡은 아닌가 하는 점도 의문 대상이다. 조지 테닛 CIA 국장이 정보를 수집.분석하는 산하 조직에 백악관의 목적에 맞게 정보를 가공하도록 압력을 가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CIA 국장은 정보조직의 책임자이면서 동시에 정치인인 대통령의 최고 정보참모라는 이중적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기관의 속성상 압력 여부를 밝힌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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