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와 그 주변 사람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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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27면

김경한 변호사·전 서울고검장

마침내 신정아씨와 변양균씨가 검찰에 구속됐다. 여자와 권력과 돈,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요소를 다 갖춘 까닭에 지난 2개월여 동안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빠짐없이 화젯거리로 등장했던 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한때의 안줏거리로 삼다가 잊어버려도 좋을 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신씨와 변씨 두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을 둘러싼 학계·종교계·예술계·관계·재계 등 온갖 분야에 걸친 지도급 인사들의 위선과 방종과 비리가 총체적으로 뒤엉켜 우리 사회를 뒤흔든 사건이다. 여기에 중요 국가기관의 경솔함과 무책임이 보태어져 사태의 심각성을 증폭시켰다.

먼저 가짜 행각으로 대학교수도 되고 미술감독도 되고, 최고위급 공직자의 혼을 송두리째 빼앗기도 한 신정아씨.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가짜인가. 그 작은 여인이 저지른 엄청난 일을 보면서 여자란 참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리고 변양균씨. 그는 장·차관을 거쳐 청와대 제3인자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한 여인과의 사련(邪戀)에 빠져 그녀가 원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특정 직위가 되었건, 국가예산이 되었건, 압력행사가 되었건 가리지 않고 발 벗고 나섰다. 불과 한 달여 전까지 그는 “공무원 30년을 바르게 살아온 사람”이라고 강변해온 터였다.

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 그들은 경솔했다. 변양균씨 관련 의혹이 터져나오자마자 대통령은 “깜도 안 되는”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한 칼에 무질러 버렸다. 청와대 대변인은 마치 변씨 개인의 대변인인 양 연일 TV에 나와서 그를 감싸기에 급급했고, 언론보도에 법적 조치까지 들먹였다. 사람을 잘 가려 등용하는 능력은 통치권자의 필수요건이다. 또한 가볍게 말을 내뱉었다가 황급히 거둬들이는 것은 바람직한 지도자의 모습일 수 없다.

검찰은 처음 이 사건 수사에 안이했다. 초동에 40여 일간 수사를 미적거렸다. 3주 전 겨우 몇 가지를 엮어 청구한 구속영장은 기각되고 말았다. 공휴일까지 반납하면서 부랴부랴 수사를 보강해 간신히 영장을 받아내기는 했지만 시종일관 사건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능하고 힘있는 검찰 조직이 아닌가?

당초 신정아씨에 대한 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스로도 구속을 각오하고 실질심사마저 포기한 신씨 자신이나 그 변호인조차 뜻밖의 소식에 한동안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물론 법원으로서도 자기 논리가 있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은 건전한 상식과 일반의 법 감정을 떠나 별세계에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신씨는 나라를 뒤흔든 중대한 범죄 사건의 핵심 인사다. 또 난마처럼 얽혀 있는 관련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데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점은 별로 고려대상이 되지 못했다.

대형 사건의 경우 주된 피의자가 구속되면 그것으로 수사의 큰 단락이 지어지는 것이 통례다. 신씨는 영장이 기각되어 수사가 장기화됨으로써 많은 피의사실이 추가되었고 연이은 소환 등으로 피의자 스스로도 고초를 겪었다. 아니할 말로 영장 기각이 언제나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것일까. 나아가 가짜 인생을 살아온 그녀에게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한다면 수긍이 가겠는가.

언론은 이번 수사를 촉진하는 데 한몫한 것이 사실이지만 고질병인 선전성 보도는 변함이 없었다. 심지어 사건과 전혀 무관한 나체 사진을 대문짝만 하게 보도하면서 언필칭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웠다. 하지만 자기 아내 아닌 다른 여인의 벗은 몸을 알 권리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시도 때도 없이 도덕적 우위를 자랑해온 현 정권, 그 핵심에서 심각한 도덕적 해이와 난맥상이 드러났다. 말기에 이른 권력 내부에 자정장치도 점검장치도 모두 고장나 작동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구속되는 씁쓸한 장면을 보면서 지금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얼마나 많은 신씨와 변씨류의 사건이 잠복해 있을까 생각하니 왠지 불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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