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수용소 생존확인 高相文씨 서울집 가족들 통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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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살아있다는 소식은 반갑지만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이 더위에 강제노동을 하느라 병이라도 나지않았는지….』 네덜란드 연수중인 79년 납북된 高相文씨의 부인 趙福熙씨(40.서울은평구갈현동)는 남편의 북한 정치범수용소 수감소식을 접한 30일 사무치는 그리움에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생이별 15년의 아픔이 새삼 북받치는듯 아빠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딸 賢美양(16.서울Y여고1)과 함께 연수당시 남편이 보낸 60여통의 편지와 사진을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사랑하는 당신의 자상한 편지를 반복해 읽을 때마다 힘이 솟곤 합니다」로 시작하는 신혼의 정이 듬뿍 담긴 당시의 편지들을15년 세월동안 어루만지며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의 귀환을 기원해왔다는 그녀는『이미 중년이 된 남편과 재회,가정 을 다시 꾸려가는 꿈을 수없이 꾸어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동안 의상실을 경영하며 친정어머니 金栢子씨(68).딸과 함께 오직 남편의 무사귀환만을 빌며 보내온 세월이 언제까지 계속될는지 한없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슬픔과 고통에 새삼 북받치기는 高씨의 노부모와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늙은이가 아들 얼굴 한번 보고 눈감는 것말고 무슨 소원이 더 있겠소….』 아버지 高興得씨(80.서울성동구하왕2동)는행여 아들이 돌아올까 15년동안 이사도 가지않고 기다려온 낡은3층집에서 부인 韓蓮姬씨(75),큰 아들 相苟(48.相文씨의 형).3남 相午(40.회사원)씨등과 함께 낡은 아들의 사진등을어루만지며 눈물의 밤을 지샜다.
지난 84년 아들의 정치범 수용소식을 보도를 통해 안 이래 생사조차 알지못하다 살아있음을 확인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며 주름진 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쳐냈다.
어머니 韓씨도『길을 걷다 비슷한 젊은이를 보면 혹 아들일까 뒤따라 갔다가 눈물을 머금으며 되돌아선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며 프랑스 파리에 이민가 있는 큰딸 靜枝씨(50.相文씨 누나)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아들의 생존소식을 알리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相苟씨는 동생이 처음에 자진월북자로 선전되다 정치범으로 몰리며 탄압을 받게된 것은 강직한 성품탓일 것이라며 북한측은 더이상 만행을 중지하고 동생을 가족품에 돌려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金東鎬.芮榮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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