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산책] FTA와 산업구조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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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 맞습니다, 맞고요. 그러나 지금처럼 FTA를 돈으로 사는 식은 곤란하다. 자칫 뜨거운 물을 피하다가 끓는 기름 속으로 뛰어드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까지 수입한 칠레농산물은 2천1백만달러였다. 그리고 FTA로 어려워질 농업부문에 지원하겠다는 돈이 1조원이다. 그렇다면 올해부터 협상이 본격화할 한.일FTA의 값은 얼마나 될까.

한.일 양국이 자유무역을 하면 제조업체, 그 중에서도 기계업체들은 일본업체들과 직접 경쟁해야 한다. 아마 견디기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세계시장에서 잘 나간다는 자동차 업계마저 일본과의 자유무역 소식에 들썩거리고 있을 정도니까. 지난해 수입한 일본제 기계는 75억달러였다. 따라서 한.칠레FTA 선례대로 하면, 한.일FTA를 돈으로 사려면 3백75조원이 든다는 계산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관련해 그 말썽많은 FTA를 왜 하려는 것인지 한번 따져보자. FTA는 수출을 늘리려는 목적도 있지만, 돈.사람.기업(시쳇말로 자원)이 돈벌이가 안 되는 업종으로부터 돈벌이가 되는 업종으로 옮겨가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 비경쟁부문은 어렵지만, 그래야 나라 전체 돈벌이에 더 이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 무역협상 때마다 돈벌이 안되는 부문을 돈으로 도와주면 아까운 자원이 그 부문을 떠날 하등의 유인이 없다. 업종별로 돈을 주는 것은 이번을 마지막으로 하자. 대신 농업이든 제조업이든 개방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모두를 도와주는 '한주머니'를 만들자. 그렇다고 개방 때문에 못살겠다고 말만하면 누구나 빼쓰는 게 아니라 수입경쟁을 못견뎌 '떠나는 부문'이 있을 때 이들이 더 순탄하게 '떠나는 걸'(시쳇말로 구조조정을) 도와주는 주머니여야 한다는 말이다. 이 역할은 개별부문에 휘둘리지 않을 부서만 할 수 있다. 무역위원회가 그런 예다.

그러나 지금의 무역위로는 안 된다.사실상 산자부 산하기관이기 때문이다.관련업계와 이해를 같이하는 일개부처의 산하기관으로서는 감히 '구조조정 안 하면 나라 돈 못 준다'는 유의 결정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무역위를 독립시켜 누가 보더라도 그 결정이 공정하다는 생각이 들 때 가서 '무역 구조조정 지원기금'이라는 주머니 관리를 맡겨도 늦지 않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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