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핵무기 암시장, 칸 등 10명이 주물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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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핵무기 개발 기술의 국제 암시장은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박사를 중심으로 한 10여명이 주물렀다. AP통신은 3일 무기사찰 전문가들과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이렇게 주장했다.

칸 박사가 설계도와 제작기술을 전수하면서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등지에서 각종 부품을 조달해 리비아.이란.북한 등으로 보내왔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동과 유럽에 주재하는 문제 국가들의 외교관도 개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부품을 판매한 서유럽의 회사들은 그 부품들이 무엇에 쓰이는지,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도록 위장 구매자들이 동원됐다고 한다.

이처럼 핵기술 이전을 위한 국제 암시장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최근 파키스탄이 자국의 핵과학자들을 수사하면서부터다.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은 그동안 핵무기 개발 기술의 이전을 완강하게 부인해왔다. 그러나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파키스탄에 지원한 C-130 수송기가 2002년 7월 평양에서 미사일 부품들을 실어나르는 것이 포착됐다. 칸 박사가 10여차례 북한을 드나드는 것도 미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었다. 두 나라가 농축우라늄 기술과 미사일을 교환한다는 의심을 살 만했다.

또 리비아는 지난해 말 핵무기 개발을 일방적으로 포기하면서 파키스탄에서 받은 기술이전 내용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샅샅이 까발렸다. 심지어 이란도 겉으로는 핵개발 계획의 존재를 부정하면서도 파키스탄과의 '거래'에 대해 IAEA 측에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자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두달 전 조사에 착수, 모든 책임을 칸과 일부 과학자에게 떠 넘겼다. 하지만 일각에선 무샤라프 정권이 칸을 '희생양' 삼아 문제를 무마하려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가 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이미 북한에 대한 기술 이전은 무샤라프도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 칸의 측근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미국도 더 이상은 파키스탄을 몰아세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바라는 것은 추가적인 기술이전을 차단하는 것이지 과거의 행위를 문제삼아 단죄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무샤라프 정권을 위태롭게 해 반미정권이 들어서는 상황은 더더욱 원치 않는다. 따라서 미국은 파키스탄 정부가 칸박사를 문제의 핵심 고리라고 발표한 직후 "이는 무샤라프 대통령이 파키스탄이 다른 국가에 금지된 기술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표했다.

윤혜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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