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넘쳐나는 가짜 경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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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길가에 차를 세웠다. 낯선 사내가 다가와 손을 벌렸다. 주차비를 내란다. 당신 뭐냐고 물으니 사내는 말없이 몸을 돌렸다. 때에 전 외투의 등판에는 조악한 모양의 영어가 쓰여 있었다. 바로 'POLICE'다. 베이징(北京) 길가에서 심심찮게 겪는 일이다.

하루는 객기가 발동했다. 보통 1~2위안을 요구하는데 이날은 5위안을 불렀기 때문이다. 홧김에 어느 경찰서 소속이냐고 따졌다. 기자라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러자 근엄한 표정이 갑자기 바뀌었다. 큰 벼슬이나 한 것 같이 무게를 잡던 그가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속삭이는 게 아닌가. "샤강(下崗.정리휴직)된 지 얼마 안 됐는데…."

중국을 찾는 많은 한국인이 궁금해하는 게 있다. 아파트마다 배치된 제복의 젊은이가 경찰이냐는 것이다. 때론 '중국은 치안이 나빠 경찰이 아파트 경비를 선다'는 식으로 멋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단정한 제복과 모자에 견장까지 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아파트 경비업체의 보안요원들에 불과하다.

경찰복장 모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축도살 감찰.담배 관리.위생 감독 요원에서 톨 게이트 요금 징수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경찰과 유사한 제복을 입고 있다. '멀리서 보면 경찰이고 가까이서 보면 경찰 같고 자세히 보면 가짜 경찰'이라고 경찰제복 디자인을 했던 가오산(高珊)이 탄식할 정도다. 그 때문에 '경찰이 사람을 때리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출동한 진짜 경찰이 가짜 폭력경찰을 잡아오는 일이 허다하다.

조사 결과 31개 성.자치구.직할시 중 23개 지역에서 가짜 경찰이 횡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제복 모방에 대한 제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국무원은 2일 마침내 '제복 착용 정돈 통지'를 발표했다. 앞으로 경찰복장 모방을 엄금한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 같은 점잖은 조치로 중국에서 벌어지는 '제복(制服)의 난(亂)'이 평정될 수 있을까.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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