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투데이

6자회담의 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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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최근 끝난 6자회담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를 개략적 보도만으로 분석하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나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내놓고 싶다.

우선, 협상 참가국들은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2·13 합의에서 표출된 희망을 좀 더 구체적·실제적 약속으로 바꾸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뤄냈다. 미국의 관점에서 보면,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성과가 눈에 띈다. 우선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과 재처리 행위가 다시 통제된다는 점이다. 북한은 비록 핵 시설 리스트-핵무기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지 않아 불완전하지만-를 연말까지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영변의 핵심적인 핵 시설 불능화를 위한 일정도 잡았다. 북한 측은 상당한 양의 중유 지원을 약속받았다. 미 국무부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빼겠다는 약속도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미국은 북한을 옥죄어온 적성국교역법을 통한 제재도 중단하겠다는 모종의 약속을 해주었다.

하지만 찜찜한 상태로 남아 있는 문제도 있다. 북한이 핵과 관련된 물질을 시리아로 수출했다는 소문이 회담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됐지만, 핵 관련 물질과 기술·노하우를 이전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약속을 믿어주는 분위기에서 더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시리아에서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게 돼버렸다. 미국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빼는 일정은 당장 정하지 않아 일본과의 갈등을 피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약간의 시간을 벌 수는 있겠지만, 이 문제로 인해 불화가 생길 가능성은 계속 남아 있다. 그리고 불능화가 정확하게 무엇을 요구하는가에 대한 합의가 있었는지도, 내가 보기엔 불확실하다.

모든 것을 고려해볼 때, 6자회담은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각국 대표들은 비핵화라는 목표를 향한 약간의 진전을 이뤄냈을 뿐이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이번에도 배제됐다. 미식축구로 설명하자면, 이번 성과는 최종적인 터치 다운이라기보다는 이를 향한 첫 번째 다운이라 할 수 있다. 경기는 계속된다.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미국이 ‘둘째 단계의 행동’을 제안받자 즉시 동의한 것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핵 외교를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시와 라이스는 이 문제의 진전을 간절히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부시 행정부는 9·11 이후 미국이 힘을 집중했던 중동에서 좋은 소식을 거의 접하지 못해왔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에선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전략적이거나 정치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이슈들에 달라붙기에는 좋은 시기가 아니다. 하지만 미국 정치 지형도의 몇 가지 특성을 살펴보면, 내년에 장애물들이 해소돼 더 많은 진전을 이끌어 낼 수도 있으리란 느낌이 든다.

우선 부시 대통령의 레임덕이 시작된다. 게다가 대권을 향해 달리는 공화당 후보들은 백악관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여기에다 북한과의 협상을 맹렬하게 비판해온 사람의 대부분이 일선 무대에서 사라졌다. 또 하나, 의회도 북한을 비핵화하려는 노력을 지지하고 있다.

물론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가 관건이다. 북한은 과연 꾸준하게 협상에 임할 것인지, 아니면 다음 대통령으로부터 더 많은 관대한 거래를 이끌어 내겠다는 기대감에서 지연전술을 들고 나올지 궁금하다.

한국 대선도 변수다. 12월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북한과의 교류를 늘려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차기 대통령이 더 많은 상호 교류를 이끌어 내는 작업을 감상적이지 않으면서 현실적인 의지를 갖고 추진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북한의 인접 국가와 미국 사이의 외교정책 조율은 더 쉽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아머코스트 전 미국 국무차관 브루킹스 연구소 소장

정리=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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