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요한의나!리모델링] 사랑은 매달리는 게 아니에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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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씨(32세)는 미혼의 직장여성이다. 첫사랑의 아픔 이후 다시는 사랑을 하지 못할 거라 여겼던 그녀에게 올해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다. 첫 사랑의 상처가 힘들었기에 마음속으로 ‘지나치게 의지하지 말자!’는 주문을 수없이 외우며 다가섰다. 하지만 점점 ‘자신을 떠나면 어떻게 할까?’라는 불안감과 함께 이 사람만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놓치지 말자는 욕심이 불같이 일어났다. 점점 하루 종일 연락을 보내고 그의 답장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당분간 만나지 말자는 그의 메시지가 오면서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필사적으로 처음으로 되돌리려 했지만 노력은 허사가 됐다. 그녀의 삶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회사마저 그만둔 그녀는 결국 상담실을 찾았다.
 
 우리는 흔히 사랑과 집착을 혼동하기 쉽다. 그녀 역시 상대를 더 사랑한 자신이 바보라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물론 집착하지 않는 사랑은 없지만 그렇다고 집착이 사랑으로 진화하지는 않는다. 관계가 가까워지고 파국에 치달으면 서로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흔히 관계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모든 에너지를 상대에게 ‘올인’한다. 즉, 자신의 존재를 관계로 채워 버리고 상대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느낀다. 그렇기에 이들은 관계에서 스스로 벗어나 혼자 있을 수 없다. 이들은 흔히 ‘사랑이란 ~해야 해!’라는 신념으로 이루어진 틀에 관계를 끼워 넣으려고 한다. 그렇기에 사랑이 상호성장의 관계라면 집착은 일방적인 관계중독인 셈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상대가 떠나는 것을 결국에는 허용해줄 수 있다. 하지만 집착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불가능하다. 상대는 자신의 삶이자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관계에 집착하게 되는 것일까? 먼저 K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고 느껴 본 적이 없어요. 어릴 때부터 서로 사이가 안 좋은 부모님은 마치 하숙집 아저씨, 아주머니 같았어요. 젖이 부족한 아이처럼 내 마음 안에는 늘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고 관심을 보여줄 때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껴요. 나는 다른 사람의 눈빛 안에서만 나를 느껴요.” 나는 그녀에게 마음을 시각적으로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하얀 색 엷은 테두리에 둘러싸인 검정색 구를 떠올렸다. 그녀는 그것이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마음의 블랙홀이라고 이야기했다.
  
 집착은 이렇듯 결핍에서 나온다. 배가 고픈 사람이 음식을 먹지 못하면 먹고 싶은 욕구는 더욱 커져 유독 먹을 것에 집착하게 된다. 관계에 대한 집착도 마찬가지다. 애정이 결핍되면 자아의 발달은 이루어지지 않고, 애정의 욕구는 팽창되어 삶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인다. 그것이 바로 집착이다. 그 집착을 받아줄 수 있는 현실의 사람은 없다. 있다면 오직 한 사람, 자신뿐이다. 나는 지금도 K씨와 함께 마음의 카오스 속에서 ‘자기’라는 별을 만들고 있다.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 mt@mentaltraining.co.kr

집착에서 벗어나려면
■상대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보자. 자신이 집착하는 상대는 자신의 결핍이 무엇인지 보여 주는 거울이다.

■ 자기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자신의 세계가 없는 사람은 존재와 관계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관계 속으로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

■ 집착에 가려진 내면의 욕구를 찾자. 삶의 위안과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관계와 대상이 많을수록 집착은 엷어진다. 자신이 잘하는 것에 집착하라! 그때 집착은 몰입으로 변한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자. 영원한 것은 없다. 사랑에서 ‘처음처럼’은 환상일 뿐이다. 사랑은 발달시켜 나가는 것이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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