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은 중국에 밀리고 인프라는 일본에 뒤지고 관광도'샌드위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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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지난여름 가족과 제주도 피서를 의논하던 이모(45)씨는 계획을 바꿔 중국 패키지 투어를 갔다. 왕복항공료(1인당 18만원), 숙박료(콘도 1박당 15만원), 렌터카(하루 9만원) 등 기본 경비에 식대와 공원 관람료 등을 더해 보니 4인 가족이 3박4일 머무르는 데 200만원 가까이 든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베이징 일대의 관광지를 돌아보는 패키지 상품은 1인당 45만원대였다. 제주 관광보다는 중국 관광이 비슷하거나 싸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굴뚝 없는 미래 산업’인 관광산업도 제조업처럼 중국·일본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값은 중국에 밀리고, 관광 인프라와 품질은 일본에 뒤진다. 이런 의식이 관광산업의 최일선에 종사하는 여행업계에 팽배해 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다. ‘관광 입국’의 앞날은 험난하다.

이런 내용은 대한상공회의소가 10일 국내 307개 여행업체를 상대로 ‘우리나라 관광산업의 경쟁력 및 대응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여행업계는 숙박·편의시설이나 서비스 등의 관광 인프라와 품질경쟁력 면에서 일본·동남아에 비해 뒤지고, 숙박비와 교통비 등 가격경쟁력은 중국에 밀린다고 평가했다.

나라별 관광산업 경쟁력 지수를 최고 1점에서 최저 4점으로 매긴 결과 인프라와 품질경쟁력은 일본이 평균 1.4점으로 가장 높았고, 한국은 2.8점으로 3위였다. 가격경쟁력도 중국이 1.6점으로 가장 높았고, 한국은 3.2점으로 3위였다.

‘관광자원 경쟁력’ 항목에서는 중국(1.8점)과 일본(2점)이 근소한 차이로 1, 2위를 했지만, 한국은 3.5점으로 동남아에도 크게 밀리면서 꼴찌를 기록했다. 한마디로 ‘볼 만한 게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 인식은 한국 관광산업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 전망으로 이어졌다. 여행업체의 95.1%는 ‘관광산업이 미래 유망산업’이라는 데 공감했지만, 정작 ‘한국 관광의 미래가 유망하다’는 답은 9.9%에 불과했다.

여행업체들이 느끼는 외국인 관광객의 불만은 ‘빈약한 볼거리’(40.8%)와 ‘과다한 비용’(26.8%)으로 집약됐다. 실제로 중국 여행사들이 자국민을 상대로 내놓는 한국과 일본 패키지 여행상품은 원고·엔저 현상 등으로 가격 차이가 거의 없다고 여행업계는 전한다.

손세원 대한상의 산업조사팀장은 “중국·일본·동남아 등 각국 정부는 급성장하고 있는 아시아 관광시장 선점을 위해 다양한 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며 “우리도 신상품 개발, 세제 지원, 규제 완화 등의 정책 방안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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