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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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3.실종 ○13 써니엄마가 나를 학교로 찾아왔던 날 밤에 나는 써니엄마에게 세 번이나 전화를 했다.아무 소식이 없다고 했다.자정이 다 돼서 내가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을 때는 써니엄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틀림없이…선희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알겠지만 이럴 애가 아니거든.틀림없이 애한테….』 『글쎄요.선희가 전화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틀림없이…저한테라도 전화를 했을 텐데요.』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저한테는」이라고 말하려다가「저한테라도」로 바꿔서 말했다.써니엄마에게는 모든 게 상처가 될 수도 있을 거였다.
『어쩌지…이렇게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는데…선희는 무사하지 못한데 에미라는 난 가만히 앉아 있구….』 『혹시요…혼자 있기가 힘드시다면 제가 지금 그리로 갈 수도 있는데요.…괜찮으시겠어요?』 나는 아주 어른처럼 말했다.나는 써니의 엄마에게도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 거였다.
『아냐,됐어.그런데…저 뭐지,그래 아무래도 경찰서에 가봐야겠어.내일 아침까지 소식이 없으면 말이야.경찰서엔…아예 오늘 갔을걸 그랬나봐.모르잖아,교통사고라도 당한 거라면…아냐 그럴 리는 없을 거야…아니야 그렇지만….』 써니엄마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아마 울먹이는 거 같았다.나도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졌다.써니의 소리없이 웃는 얼굴이 아른거린 거였다.나는 써니엄마에게 아침일찍 찾아가겠다고 말하고 우리집 전화번호를 불러준 다음에 전화를 끊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전화를 해달라고 하였다.
불을 끄고 누워서 눈을 감았는데 써니가 선했다.교통사고같은 건 아닐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써니네 집에 도착한 게 일곱 시 경이었다.일하는 아주머니가 대문을 따주었는데,써니엄마는 초췌한 모습으로 거실에 앉아있었다. 『아무래도 신고를 해야겠어,그지?』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써니엄마는 내게 학교를 빼먹어도 되겠느냐는 따위의 질문을하지는 않았다.
『경찰서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써니엄마가 운전대에 앉았고그 옆자리에 내가 앉았다.
『마포서에 가야 될 거예요.제가 아니까 일단 큰길로 나가세요.』 경찰서 입구의 전경에게 내가 사정을 말했더니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켜주었다.그 사무실에는 형사인듯한 사복차림의 사람들서넛이 푸석푸석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우리 아이가 없어져서 왔는데요,납치당한 거 같아요.』 써니엄마가 한 사람을 붙잡고 무조건 말했다.
『납치요? 납치당한줄 어떻게 아셨죠? 여자앱니까?』 『맞아요.그런데 이틀째 행방불명이에요.절대로 그럴 애가 아니거든요.』형사인듯한 사내가 저 혼자 고개를 젓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기 저 사람한테 가서 말하세요.납치다 그렇게 단정하지 마시구요.』 우리는 스포츠머리를 한 사내가 앉은 책상 앞에 가서나란히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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