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화제>공장제작 미술작품 미술품인가 공산품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작가가 공장에 주문해서 생산해낸 것을 미술품으로 볼것인가 아니면 공산품으로 볼것인가.
난해한 현대미술의 상징물같은 이런 작품들이 최근 국내에 들어와 한 화랑과 세관사이에서 입씨름의 대상이 되고 있다.문제의 작품은 60년대 미국에서 미니멀리즘의 중심작가로 활동했던 도널드 저드(1928~1994)가 3년전에 제작한『무 제』2점.
이 두 작품은 가로 세로 각 15㎝,길이 1백5㎝크기의 알루미늄괴에 3줄의 홈을 파고 노랑.파랑등 12가지 색을 칠해 12점 한 세트로 만든 작업의 일부다.
미군정 당시 김포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저드는 1965년 특수한 오브제(specipic object)란 개념을 스스로 창안해냈는데 그에 따르면 사물의 절대적인 객관성은 특수한 오브제 속에서 면.형태.색채로 나타나며 그것이 보는 사람 의 지각기능을 자극한다는 것.
저드는 이 이론에 따라 자신이 고안한 것들을 제조공장에 주문,생산함으로써 기계적인 완벽성 속에 물체의 극단적인 간결함을 드러내보이는 작업을 해왔다.
국내에서의 시비는 지난주 서울동숭동 인공화랑이 올가을 개최예정인 그의 회고전을 준비하면서 문제의 작품 2점을 미국에서 들여오면서 발단됐다.
서울세관은 이 작품에 대해 「사출된 알루미늄」이라고 적힌 작품제작방식을 문제삼아 작가가 직접 만든 오리지널작품으로 보기 어렵다며 과세판정을 위해 통관을 지연시켰다.
인공화랑은 수입된 물건이 예술품이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드의 카탈로그와 현대조각에 관한 책자를 들고 담당자를 설득했으나 세관측은 저드의 작품이 기존 예술작품과는 다르다는 입장을굽히지 않고 있다.
이 작품을 공산품으로 볼 경우 인공화랑은 수입가의 20%에 해당하는 관세를 물어야 하는데 세관측은 상식적 판단을 넘어선 저드의 작품에 대해 『예술품으로 볼것이냐,아니냐』를 놓고 관세청 감정과에 유권해석을 요청해 놓은 상태.
인사동의 한 화랑관계자는 『관세를 무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예술작품을 공산품으로 판정한 사실이 알려지면 세계적인 망신이 될 것』이라며 세관측의 무지를 꼬집었다.
이 시비는 관세청의 감정결과에 따라 어느 쪽으로든 해결이 되겠지만 비단 세관 관계자 뿐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감정결과보다는 현대미술의 난해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하는 해프닝으로 기억될 공산이 크다.
〈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