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호 기자의 문학터치 <112> ‘문단 여동생’ 김애란의 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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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태 전 이맘때, 그러니까 채 첫 책을 못 엮은 1980년생 김애란(사진)이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직후. 문학터치는 아예 이렇게 썼다. ‘잊지 마시라, 이름이 김애란이다. 올 문단이 거둔 최고 수확 중 하나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김애란은 이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이름이 됐다. 아니 김애란은 오늘, 한국문학의 위기 운운할 때 하나의 대안으로까지 꼽히는 이름이다. 하여 김애란을 떠올리면 문학터치는 혼자서 뿌듯하다. 한 작가의 성장을 맨 처음부터 지켜보는 건 반갑고 고마운 일이어서다.

김애란의 매력엔 묘한 구석이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문학터치는 읽기에 부담 없는, 명랑하고 경쾌한 요즘 한국소설을 말할 때마다 김애란을 내놓았다. 곧이어, 읽고난 뒤 짠한 기운이 번지는, 너무 가볍지 않은 요즘의 한국소설을 추천할 때도 김애란을 꺼내들었다. 언뜻 앞뒤가 안 맞는 듯싶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갓 출간된 두 번째 창작집 『침이 고인다』(문학과지성사)에서 예의 그 묘하다는 매력을 짚어본다.

우선 이런 구절이 있다. ‘레는 곁눈질하는 느낌이고, 솔은 까치발 선 인상을 줬다. 미는 시치미를 잘 떼고, 파는 쾌활할 것 같았다(12쪽).’ ‘복수심을 안고 포복해 있는 간장 게장(170쪽).’ ‘(동네) 여관의 이름은 여관이다. 여관 모르냐, 뭐 다른 설명 필요하냐는 듯(84쪽).’

저 먼 데의 풍경을 눈 앞에 끌어다 놓듯이 재현하는 생생한 묘사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살짝 윙크를 하는 듯한 위트.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씩 집어내는 김애란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파릇하고 투명한 기운이 막 퍼지는 듯하다.

하나 여기서 그치면 김애란은 다만 참신할 따름이다. 여느 젊은 작가와 분간이 안 된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나 더 얹은 다음에야 김애란의 매력은 비로소 완결된다. 그건, 세상 다 살아버린 사람처럼 툭툭 내뱉는, 나이답지 않은 어떠한 삶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이를 테면 다음의 구절이다.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151쪽).’-평생을 식당에서 일하다 죽은 엄마를 떠올리며.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월급날은 번번이 용서를 비는 애인처럼 돌아왔다(50쪽).’-그녀가 학원 강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문득 나의 하늘은 당신의 천장보다 낮다는 생각이 들었다(28쪽).’-반지하에서 사는 ‘나’가 창밖 세상을 올려다보며.

김애란이 마냥 미쁜 건 이 때문이다. 한창 객기를 부려도 될 법한데 김애란은 시종 의젓하다. 종종 눈에 띄는 어리광은, 가만히 들여다 보면 독자를 염두에 둔 일종의 포즈일 뿐이다. 어린 김애란은 의외로 삶의 그늘을 알고 있다. 몰래 광에 들어가 숨죽여 울고 나오는 어미의 젖은 소매를 알고, 반지하 셋방살이의 설움을 알고, 내일이 불안한 청춘의 창백한 낯빛을 안다. 그리고 그 지친 영혼에게 자신의 좁은 어깨를 빌려줄 줄 안다.

문단에서 김애란은 곧잘 “애란이”로 통한다. 나이 탓이겠지만 꼭 나이 때문은 아니다. 2년 전과 달리 요즘엔 김애란보다 어린 축도 몇 된다. 그런데도 김애란은 여전히 “애란이”로 통한다. 21세기 벽두, 배우 문근영이 ‘국민 여동생’이듯이, 김애란은 ‘한국문학의 여동생’이다. 한 평론가의 말마따나 김애란을 사랑하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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