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직업] 국회의원 보좌관-체력은 기본, 머리는 필수 정치판의 숨은 주역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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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다. 이달 중순 시작되는 국정감사와 연말 치러질 대통령 선거 준비를 앞두고 국회의원 비서관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왼쪽부터 고영만(오영식 의원실) 비서관, 박혜성·허훈(나경원 의원실) 비서관. 최승식 기자

“오전 7시엔 사무실에서 신문기사를 검색하고, 오후 10시쯤 되면 일거리를 싸들고 퇴근을 할까 사무실에서 밤을 새울까 고민한다”

국회의원 비서관인 박혜성(29·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실 6급 비서관)씨는 자신의 일상을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했다. 특히 최근엔 17일부터 열리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워낙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국정감사가 끝나면 곧바로 대통령 선거라서 이런 근무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영만(33·대통합민주신당 오영식 의원실 6급 비서관)은 “국회의원 비서관을 하려면 우선 체력이 따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직업으로서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비서관의 삶을 박 비서관과 고 비서관에게서 들어 봤다.

◆사회 변화를 주도한다는 자부심=고 비서관은 “어릴 적 동네 아저씨들이 술을 마실 때마다 내뱉는 정치인에 대한 욕설을 들으면서 역설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뒤에서 욕하는 것보다는 나서서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대학에 들어갈 때도 정치외교학(서강대)을 선택했고 빈활·농활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02년 대통령선거 때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현실 정치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국회 인턴 6개월을 거쳐 2005년 의원 비서관 직을 얻었다.

박 비서관은 특수교육학(이화여대)을 전공하고, 자원봉사를 하다 비서관에 특채됐다. 장애인 정책에 관심이 많아 국회연구단체인 ‘장애아이 We Can’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지난해 7월 정책보좌 비서로 정식 임용됐다. 4월에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안’이 제정될 수 있도록 보좌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두 비서관은 “국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사회의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체력은 중요한 밑천=의원 비서관은 ‘국회의원의 손과 발’노릇을 해야 한다. 신문 기사를 검색하는 일부터 의원이 속한 상임위와 관련한 각종 질의와 자료를 준비하고, 의원이 속한 단체활동을 보좌하는 등의 일을 한다. 의원이 속한 위원회에 따라 만나는 사람도 달라진다. 고 비서관은 의원이 산업자원위 소속이기 때문에 주로 산자부 공무원의 업무를 분석한다. 중소기업이나 재래시장 사람들의 민원도 많이 접한다고 한다. 지역구 의원의 비서관들은 해당 지역주민의 민원과 주요 경조사까지 챙겨야 한다. 또 의원의 각종 행사장 방문도 수행하는 등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

특히 국정감사 기간 동안은 육체적으로 힘이 든다. 박 비서관은 “비서관들은 사무실 캐비닛에 이불 한 장씩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 비서관은 “지난해에는 주말에 하루도 못 쉬고 매일 18시간 이상 일하는 강행군을 했다”고 회고했다.

◆인턴 경험이 채용에 유리=비서관 채용 권한은 각 국회의원에게 있기 때문에 채용 방식도 다양하다. 최근 들어 공개채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지인들의 추천을 통하는 경우가 많다. 박 비서관은 “공개채용을 하는 경우는 보좌관 인터뷰, 의원 인터뷰, 논술시험 등을 보기도 하지만 의원 대부분이 국회활동 경력자를 원한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의 인턴 경력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각종 선거 역시 의원 비서관으로 진출하기 위한 좋은 기회다. 고 비서관은 “총선 때는 국회활동 경력자와 비경력자의 구분을 두지 않기 때문에 인턴 경험이 없더라도 경험을 쌓고 정치인들과 친분을 쌓는 좋은 시기”라고 설명했다.

비서관으로서 기본적인 능력은 분석력과 글쓰기다. 국정감사와 상임위 활동에서 의원을 보좌해 핵심 사항을 집어내고 분석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또 신속하게 보고서를 작성하고 질의서를 만들 수도 있어야 한다.

◆이직률 높고, 정년 보장 안 돼=국회 보좌진은 이직률이 높다. 소속 의원이 선거에서 탈락할 경우 새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이 경우 다른 의원의 보좌진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소속 당사에서 일하기도 한다. 고 비서관은 “미래가 불투명하더라도 현실 정치에 참여하면서 사회를 변화하는데 보탬이 되고 많은 정보를 얻고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며 직업의 불안정성을 감수한다”고 말했다. 박 비서관은 “단순히 의원 비서관으로 계속 살 수는 없다”며 “자신의 앞날을 정치에 걸어보겠다는 확고한 뜻이 있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문병주 기자

◆국회의원 보좌진=한 의원실에 배정된 보좌진은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1명, 6·7·9급 비서 각 1명 씩이다. 신분은 별정직 공무원이며 연봉은 상여금을 포함해 4급이 약 6300만원, 5급 5200만원, 6급 3500만원, 7급 3000만원, 9급 2300만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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