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경선후보 사퇴한 조순형 의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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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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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퇴했나.

"내 원칙과 정도 지키기 어려웠다 포기로 경종을…"

“지지해 준 동지들과 국민께 죄송하다. 착잡하다. 나 자신의 부덕의 소치, 능력 부족 아닌가 자성한다. 경선 시작하자마자 조직 동원, 금권 타락 선거가 진행됐다. 특히 외부 세력이 노골적으로 나의 선출을 막으려고 개입했다. 내가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시정을 요구했는데도 당은 미봉책만 계속했다. 최근엔 4700여 명의 선거인단 명의 도용 사례가 적발됐다. 이런 불공정 경선으로는 평소 내가 지키려 했던 원칙과 정도(正道)를 지키기 어려웠다. 양심상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당 지도부는 공정 경선을 관리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 그래서 경선을 포기했다.”

-외부 세력이 동교동이라는 조 후보 측 주장이 있었는데.

“허허허. 난 구체적으로 언급 안 하려 한다. 대강 알지 않나, 민주당과 연관된…. 그런 조직을 통해 지시가 내려왔다는 것도 있고. 나의 당선을 저지시키기 위해 (현재 1위가 아닌) 특정 후보를 지지해 나를 2위가 아닌 3위로 전락시키려는 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우리 쪽 동지들에게 참여하지 말라는 회유와 협박도 있었다. (배석자는 ‘동교동계’ 인사들의 개입 사례를 조목조목 주장했다.)

-여론조사 상황이 나쁘지 않아 만회할 기회가 올 수도 있었을 텐데.

“외부 세력이 개입하고 투표율이 올라가지 않는 상황에선 속단하기 어렵다. 설사 가능성이 있다 해도 내 양심상, 내가 지켜온 원칙과 정도로 봐서 이런 경선에 참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포기해서 당내 경선에 경종을 울리는 길을 택하기로 했다.”

-박상천 당 대표의 출마 권유를 받지 않았나.

“간접적으로 출마 권유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마지막 출마 결심에 크게 작용했다. 당이 위기에 처해 있는데 내 안위만 생각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흔히 인생 최대 목표가 대권이어야 집권할 수 있다고 한다. 4수만에 당선된 김대중(DJ) 전 대통령이나, 3수까지 하고 있는 우리 당 어떤 분이라든가, 중학교 때부터 하숙방에 대통령이라고 써 붙여놨다는 분도 있고. 언론 인터뷰에선 대권 의지가 약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던데 나는 약한 게 아니라 아예 없었다. 나는 인생 가치관이 다르다. 내가 능력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두 번 낙선했지만 국회의원을 6선이나 하고 괜찮은 국회의원이란 평가는 받고 있는 것 같다. 얼마든지 국회의원으로서 보람을 느끼고, 정치인생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대통령 하려면 물적·인적 준비가 상당해야 하는데 전혀 없었다. 게다가 대선 후보는 각종 공약 남발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내가 그런대로 원칙 지켜서 ‘쓴소리’란 얘기를 듣는데, 과연 이걸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출마할 의사가 없었다. 그런데 당 지도부가 좀 나서 달라고 해 출마 결심을 하게 됐는데….”

-지도부에 배신감을 느끼나.

“그렇다. 좌절감도 느끼고 배신감도 느끼고.”

-결과적으론 이번에 DJ의 벽을 넘지 못한 건가.

“그렇게 얘기하긴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고….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허허허. 외부 개입도 한 요인이고, 동원 혼탁 선거도 요인이다.”

-100% 자원봉사에 의존한 이유는.

“국회의원 선거를 8번 치렀는데 거의 조직에 의존하지 않았다. 난 조직이라는 걸 불신한다. 조직은 자금으로 형성되고 유지된다. 그게 우리 정치, 선거 풍토다. 난 정치자금을 조달할 능력도 없고, 달갑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번에도 캠프 없이 할 수는 없을까도 생각해 봤다. 다들 자기 발로 와서 도와줬다.”

-당내에선 당원들과 어울리는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나 자신도 부족하다고 느낀다. 지역 위원장들을 만나서 공천 문제 꼭 언급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나는 양심상 거기서부터 회의가 있다. 당헌상 대선 후보에겐 그럴 권한이 없다. 공천 얘긴 도저히 못하겠더라. 자꾸 그렇게 어음 발행하다가 나중에 어떻게 결제하나. 만약 대선 후보가 되면 그때 또 어음을 발행할 것이고. 가령 요행히 (대통령) 됐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결국 내 방식이 현실에 안 맞는 거다.”

-경선에서 밀린 다른 요인도 있나.

“상대 진영은 벌써 10년 전부터 경선대선을 치러왔다. 자금과 조직에서 상대가 안 된다. 대학생과 유치원생 정도랄까. 거기다 투표율이 워낙 낮으니까. 선거인단 58만 명 중 10만 명만 나와도 조직이 감당할 수 없는데, 5~10%가 되면 조직으로 장악할 수 있다.”

-왜 이렇게 투표율이 낮나.

“근본적으로 국민의 외면을 받고 있다. 하지만 당원 투표율까지 낮은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민주당원들이 왜 그렇게들 (투표장에) 안 나왔는지….”

-경선 실험 실패 이유는 뭐라고 보나.

“국민선거인단 제도에 원천적으로 혼탁 소지가 있다. 워낙 무관심하니까 각 후보 진영이 자기 주변에서 모으러 다니는 것 아닌가. 심지어 기업체 명단을 베껴서 제출한다든가. 나 같은 선거 방식으로 하는 사람은 결정적으로 불리하다. 일반 선거는 최근 10년 새 돈 선거를 얼마나 많이 극복했나. 확연히 달라졌다. 그런데 당내 선거는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똑같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원인 중 하나가 경선은 정치권 내부 문제라서 사법기관이나 준사법기관이 관여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 있다는 데 있다. 내가 8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2번 실패하고 6번 됐다. 그런데 당내 최고위원 선거에선 떨어졌다. 그때 캠프 없이 했는데 12명 뽑는 데 13위를 했다. 당시 기탁금 5000만원을 합쳐 8000여만원의 경선자금을 공개했다. 원내총무 경선에 나가서도 떨어졌다. 그건 더 힘들더라. 유권자가 의원 100여 명인데 더 힘들더라고. 나를 합리화하려는 게 아니라 정당 내 선거 풍토가 변해야 한다고 본다.”

-지지자들 기대를 저버린 셈인데.

“이번엔 나도 작심하고 하노라고 했다. 올코트 프레싱을 했다. 사람이 변하면 변할수록 그대로라는 말이 있듯 변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은 것 같다.”

-경선 포기에 대한 부인(연극인 김금지씨)의 반응은.

“허허허. 아쉽긴 하지만 대통령 안 돼도 괜찮다고, 지금 정치인생 마감해도 그런대로 보람 있으니 절대 기죽지 말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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