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 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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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내 가슴이 뛰는 거 들리니.』 내가 써니의 얼굴에서 입술을떼고 속삭였다.나는 내가 얼마나 벅찬 순간을 맞고 있는지를 써니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그런 거였다.써니가 가만히 내 가슴에 자기 귀를 갖다 댔다.
『거기가 아니야.심장은 이쪽이라구.』 『난 심장이 아니라 니마음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싶단 말이야.』 써니의 귀가 뺨이 내 가슴 부근에서 움직이는데 나는 써니의 머릿결을 손가락으로 갈퀴질해 주었다.그리고 있으니까 몸도 마음도 좀 안정이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해봐.나두 니 걸 듣고 싶어.』 이번에는 자세를 바꿔서 내가 써니의 가슴에 귀를 댔다.써니의 가슴 뛰는 소리가 쿵 쿵 들렸다.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써니도 속으로는 어지간히긴장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큰 걸 어떻게 감추고 다녔지.』 정말이지 써니의 가슴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머리를 땋고 단정한 블라우스를 입고있었을 땐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었다.내가 써니의 가슴을 깨물었더니 써니가 내 머리를 밀어내면서 속삭였다.
『아아…살살해,이 바보야.』 『미안해.난 사실 처음이구…그래서 잘 할줄 모른단 말이야.』 『누군 처음이 아니겠니.넌 그런책도 안봤어?그런 비디오같은 거 본 적도 없어?』 『봤지…책도봤구 비디오도 봤지.그런데 사실은 잘 모르겠더라구.다른 애들이처음 했을 때 이야기도 들었는데…난 모르겠더라구.』 써니가 내손등에 그리고 내 빰에 입을 맞춰주었다.이상한 일이었지만,그러자 분위기가 아주 근사해진 것 같았다.우리가 이제 치르려고 하는 짓이 어쩐지 아주 경건하고 신성한 일처럼 느껴지는 거였다.
어둠 속에서,창으로 흘러드는 가로등의 불빛 때문에 그리고 서로의 눈이 어둠에 익었기 때문에,서로의 표정을 읽을 수는 있는어둠 속에서 써니가 조용히 말했다.
『나도 그런 비디오를 본 적이 있거든.현신이라구 중학교 때 친구네 집에 갔는데,두 달쯤 전인가봐,걔네 엄마아빠가 미국에 갔을 때였는데,…신기해서 끝까지 보기는 했지만 너무 징그러웠어.내가 본 게 지독한 거였는지는 모르겠는데,하여간 난…그런 건하기 싫더라구.그거 보구 나니까 괜히 어른들만 보면 얼굴이 빨개지는 거 있지.학교에 가서 선생님들을 봐도 그렇구 우리 엄말봐두 그렇구…하여간 너무 싫더라구.』 『사실은 나도 그랬어.꼭저래야 하나…그런 생각이 들긴 했어.』 『나 그런 거 봤다고 엄마한테도 말했거든.그리구 정말 다들 그렇게 하는 거냐구 엄마한테 물어봤거든.』 『그랬더니 뭐래?너희 엄마는….』 써니가 말을 멈추고 내 콧등에 입을 맞췄기 때문에 내가 끼어들었다.
『아니래.그런 걸 잘못 보면 남자를 처음부터 싫어하게 되니까조심해야 한다구 그랬어.우리 엄만…좋아하는 남자하구 여자하구 같이 있는 건 아주 좋은 거라구 그랬어.절대로 더러운 게 아니라구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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