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통화량 변화없어 감못잡아/미 감시장치 왜 몰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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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유선전화 이용 도청 어려워/병력이동없고 평양시민 표정도 변화없어/매시간 점검하는 첩보위성도 한계 드러내
미첩보위성과 감청장비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대북감시체제가 김일성 사망 사실을 놓친 것에 대한 의문이 크게 일고 있다.
개미 새끼 한 마리의 움직임도 잡아낸다는 미첩보위성이 이 엄청난 사실을 34시간 동안이나 까맣게 몰랐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국군과 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통신감시등 첩보장비들은 북한내에서 일어나는 웬만한 통화내용과 움직임등을 손금보듯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장비들이 김일성 사망을 알아채지 못한 것은 바로현대 첩보장비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국군과 미군은 북한 정황 파악을 위해 휴전선부근의 지상통신감시장치와 미군 첩보위성·통신감청 비행기등을 활용하고 있다.
비상시에는 일본 오키나와(충승)에 있는 미군 조기경보기를 띄우기도 한다.휴전선 부근 고지대에는 북한내 통화에 사용되는 전파를 수신,분석할 수 있는 한·미군의 북한 통화감시장치가 설치돼 있다.
이 통화감시장치는 북한 주민이나 군부대간 무선통화를 분석한다.이 장비들은 주파수별로 자동으로 녹음까지 된다.
특히 평양지역과 같이 휴전선과 가까운 곳의 무선통신을 도청하는 것은 비교적 용이하다.
이 감시장치에서 취합된 통화내용은 통신망을 타고 한국군과 경기도 오산·중부전선등지에 있는 미군 통화감시부대로 넘어가 컴퓨터를 이용,비밀사항을 추려내게 된다.
현재 전방에 배치된 장비는 서울 시내에서 경찰이 사용하는 무전기 통화내용도 도청이 가능할 정도로 고성능이다.
그런데도 김일성사망 사실을 못잡은 것은 김정일등 북한 수뇌들이 일반 구리선등 유선으로 연결된 직통선을 이용하고,또 전화에도 고성능 암호장비를 부착한채 서로 연락을 취했을 가능성이 큰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하고 있다.이 경우 그 직통선에 도청장비를 직접 연결하지 않고는 도청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도청장비를 연결했더라도 암호를 자동으로 풀어주는 장비가 있어야 된다.특히 북한핵시설을 탐지하는등 첩보작전에서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해온 미군 첩보 위성도 이번만큼은 두손을 들고 만 셈이다.
미군 첩보위성은 몇시간 단위로 북한 상공을 돌며 병력이동,주석궁의 사진 촬영,통화도청등을 하고 있으나 역시 그같은 징후를 읽어내지 못했다.
첩보위성은 지상 5백∼1천㎞ 상공에 떠있다가 필요한 경우 1백㎞대의 상공에까지 내려와 근접촬영,지상의 탁구공까지도 식별할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내의 철저한 통신보안과 대규모 병력이동등이 없는 상태에서 이번에 어떤 미세한 움직임을 느끼긴 했겠지만 결정적인 사망 사실까지는 알아채지 못한듯 하다.
특히 첩보위성이 평양만 계속 주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수시간 단위로 지구를 돌면서 사진을 촬영하고 또 촬영한 사진을 미국방부에 전송,이전의 사진과 비교해 이상 징후를 발견하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그같은 사실 확인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설사 조기경보기가 떠있었다 해도 이 경보기의 역할이 무선통신·전투기 추적이나 미사일 발사등을 확인하는 것인만큼 김일성 사망사실 확인은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같은 상황이 첨단 감시체제의 허점으로 야기됐다기 보다는 김정일등 북한 수뇌부가 김일성 사망을 충분히 예견하고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한국통신 중앙통신관리단 신영수단장은 『김정일등이 김일성의 죽음을 하부에 귀띔도 하지 않은채 발표준비를 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또 서방세계에서 볼 수 있는 권력층과 권력층 주변,일반국민들간의 빈틈이 폐쇄사회라는 북한의 특수상황에서는 거의 없었기 때문으로 이런 보안유지가 가능했을 것으로 진단했다.
이번 경우에는 이상을 감지할 수 있는 어떤 징후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우선 통신현황이다.국가의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통화량이 급증한다. 특히 쉽게 감지될 수 있는 군부대간 무선통신량은 어느 시점을 계기로 갑자기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통신량의 증가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특히 군부대간에 전해지는 암호통신도 특별한 것이 없었던 것같다. 시민들의 표정과 군부대의 움직임도 마찬가지.
첩보위성등을 통해 보여진 평양시의 표정은 예전과 다름이 없었으며 휴전선을 경계로 한 북한군의 움직임도 전혀 새로운 것이 없었다. 방송및 신문들의 논조도 기존 김정일 찬양 정도 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극단적인 폐쇄사회인 북한의 경우 비상사태의 징조가 상식을 뒤집는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이를 반영한 감시체제의 보완이 모색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박방주·이원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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