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장교 태국에 망명 "승려에게 총 쏠 순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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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미얀마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달 26일, 미얀마 육군 제99사단 소속으로 옛 수도 양곤에서 시위진압에 동원됐던 히타이 윈 소령은 고민했다. 상부로부터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그는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승려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는 없었다. 그러나 상부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그 대가는 총살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고민 끝에 그는 21년 동안 정들었던 군과 조국을 등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17살 난 아들을 데리고 태국으로 밀입국했다.

홍콩 일간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윈 소령은 최근 태국에서 외신 기자들을 만나 "나는 독실한 불교신자이자 군인으로서 양심에 따라 발포를 거부하고 망명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사태로 망명한 미얀마 군인 1호다.

그는 "이번 사태 때 상부에서는 발포를 위한 비밀 작전계획이 있었다"며 "만약 내가 그 명령을 따라 승려들을 향해 총을 쐈다면 죽어서 불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죄를 짓는 것은 피했지만 그의 미래는 불확실과 불안감으로 가득하다. 현재 노르웨이에 망명신청을 해놨지만 태국 정부에서 그를 미얀마로 되돌려 보낼 가능성도 있다. 또 미얀마군 저격범들이 언제 그를 노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 태국 변방으로 탈출한 난민 5명은 납치돼 처형됐다. 그래서 숨어 지내고 있으며 사진 찍기도 거부한다. 그는 "후회하진 않지만 미얀마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하루 하루가 불안과 공포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얀마 군에는 뜻을 같이하는 장교들이 많다고 말했다. 40% 정도는 최고 지도자 탄 슈웨 장군에 충성하고 나머지는 그의 잔인한 성격이 무서워 명령을 따를 뿐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앞으로 나처럼 미얀마를 떠나는 군인들이 하나 둘씩 늘어날 것"이라며 "많은 군인이 부처님의 아들인 승려에게 발포를 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간의 문제이긴 하지만 미얀마에도 양심 있는 장교가 많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안에 민주화가 실현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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