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21) 대동강 물도 때가 와야 풀린다니,어디 대동강 물 뿐이겠는가.대동강 물이 아니라 그 무엇도 때가 오면 풀린다.그러나 그때라는 게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다고 오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오뉴월 늘어진 쇠불알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거나 무엇이 다른가.익은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감나무 밑에 가 입 벌리고 누워 있으라 그 말인가. 우수 경칩이면 대동강 물도 풀린다지만 그건 절기일 뿐이다.사람 사는 일은 강물이 아니다.
노을이 붉게 바다를 물들이고 있었다.하늘은 진홍빛이었고 그 여기 저기에 누군가가 찢어서 던져 놓은 듯한 구름이 함께 물들어 있었다.무슨 놈의 경치가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 구나.시벌시벌 혼자 중얼거리며 길남은 방파제를 걸어나갔다.바 다위의 황혼이 그의 얼굴마저 붉게 물들이는 것 같다.뭐하고 뭐하고 만나면저런 게 되는 거지?젠장 바다가 오늘 같아서는,우리같은 놈이야어디 하룬들 살겠나.
그는 또 명국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사람 가는 길이 하나가 아니란 말이다.길이 대관절 뭐라드냐.사람이 다니면 그게 길이야.처음부터 어디 길이 있었다드냐.그래서 사람이 안 다니면 그땐 거기 풀 우거지고 뱀 지나다니고,그러면 그건 길이 아닌거야.』 길을 만들라는 소리였던가.아니면남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소리였던가.
가면 길이지,어디 길이 따로 있어서 여기까지 왔던가.방파제 위를 걸어나가며 길남은 오늘따라 자신이 왜 이렇게 슬프고 비장한 마음이 되는지 차라리 안타깝다.
황혼의 바다를 배경으로 검게 음각되어 서 있는 길남의 모습을,낮술이 취해 바다로 나왔던 화순이가 보았다.웬 놈이람.사내놈도 무슨 해 떨어지는 바다를 다 보러 나오나.
흐트러진 걸음걸이로 허청허청 방파제 위를 걸으면서 화순은 취한 눈으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내 팔자야 끝부러진 송곳이지.여기서 이렇게 술이나 마시다가,잡놈들 만나 잡년 되어 살다가 그러면 그만이지 또 뭘 어쩌게?나는 새에게 여기 앉아라 저기 앉아라 할까.내 마음을 내가 아는데,나는 그렇게는 안되는 년이다.여기 앉아서도 저기 생각 뿐이고,그렇지만 새도 깃을 쳐야 난다고 했는데 그랬는데 나야 깃이 있어야 날든 말든 비벼를 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