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여사원의 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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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3월초 업무가 바뀌었다.곧잘『재미있어요?』하는 질문을 받곤한다.나는『예』하고 시원스레 대답한다.하지만 밤늦게까지 일한 탓에 푸석푸석하기 일쑤인 내 안색을 살피며『힘든건 아니구?』하는염려어린,내 대답에 반신반의하는 반문을 던지는 이도 있다.이럴때면 나는 속으로 「힘은 들죠.하지만 새로운 일에 2백% 만족하는 걸요」하고 되뇌며 조금은 단호한 어조로『아닙니다』고 말하곤 한다.
『재미있어요?』는 신입사원시절 많이 듣던 질문이기도 하다.한동안은 정말로『예』하고 대답할수 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뭐 재미로 일을 하나요?」하는 생각을 감춘채 목구멍에 걸린 목소리로간신히『예…』라고 말끝을 흐렸던 적도 있다.
이렇게 한 2년쯤 지나자『재미있어요?』는 내가 후배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돼버렸다.그즈음『재미있어요?』는 건성으로 던지는 인사말이 아니라 정말 재미있게 일했으면 하는 바람과 또 고충은없는지를 살피는 마음에서 나오는 질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됐다. 기운없이『예』하던 무렵의 나는 제때 퇴근도 하고 주말이면그림도 연극도 가끔은 볼수 있었고 저녁에는 책볼 시간도 꽤 넉넉했었다.아마 그런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에 대한 욕심으로 그렇게 기운없는 대답을 했었나보다.
주저없이『예』라고 대답하는 요즘은 입사하면서 바라던 많은 바람들이 상당히 이뤄지고 있다.솔직히 말하면 나는 주먹구구로 일을 해도 되는 업무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그것은 발전 가능성이 있는 일을 할수 있기를,또 남자동료와 평등한 업무 참여의 기회를 추구하는 절실한 바람들이었다.
나만의 업무를 갖게된 지금에 와서도 나는 팩스보내기,손님 차접대,복사,타이핑 등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내가 안하면 다른 누군가의 일거리로 떨어질 것이고 분명 학벌이나 능력에서 남자사원에 못지않은 어느 여사원의 몫이 될 것이라는 것을누구보다 잘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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