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잡는 노력 강화해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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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가는 최근 상황에서 대규모 간첩단이 적발됐다는 소식은 착잡한 느낌을 갖게 한다.
우리는 분단50년만에 합의된 정상회담이 아무쪼록 좋은 분위기에서 열리기를 바라고,우리 역시 좋은 분위기의 조성에 신경을 쓸 생각이지만 이른바「구국전위」사건에 대해서는 몇가지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이번 사건은 우리사회의 민주화여부에 상관없이 북을 추종하고 남한적화를 기도하는 친북세력이 우리 내부에 엄연히 존재하고,북은 변함없이 대남공작을 계속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구국전위가 조직된 93년초는 문민정부의 출범과 같은 시기다.동구권및 구소련의 붕괴와 문민정부의 출범은 우리사회의 이른바 체제갈등이나 이념문제의 부담을 크게 덜 것으로 기대하게 했지만 이들은 바로 그때「…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지침으로… 김일성주의 정수분자들로」구국전위를 만들 었다.또 북한은 당시 「승공과 적화에 대한 상호 우려를 불식하자」는 등의 이른바 10대강령을 내놓았다.그러면서 뒤로는 남한의 지하조직을 양성하고 지령을 보내는 이중적 항태를 과거와 똑같이 계속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이 노조·학원에 침투하고 각종 시민단체들까지 친북노선에 규합토록 획책했다는 것이다.심지어 북은 이들에게 「현총련」을 적극 내세우는 것이 좋다,임금인상폭을 지나치게 높이 제기하지 말라는 등의 구체적인 지령까지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이들 조직원 7,8명이 철도와 지하철노조에 침투한 사실도 드러났는데 이번 철도및 지하철 파업의 배후에 이들의 책동이 개재되었다면 가공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 우리는 결국 남북관계가 적어도 객관적인 신뢰기반 위에 설 때까지는 내부의 허점과 북의 대남공작에 철저히 대비하고,간첩잡는 노력도 강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된다.우리 안의 친북세력이 구국전위 뿐이라고 말할 수 는 없다.민주화 또는 노동자 권익 등을 명분으로 구국전위처럼 학생운동·노동운동을 「우리당의 영도권내에 포섭하는 전환적인 전투」를 벌이려는 세력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늘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궁극적으로는 평화공존·공영의 동반자로 생각한다.그러나 그 과정에는 또 북을 경계하고 대비하는 노력도 반드시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내부가 허술해 북이 대남적화 기도에 자신감을 갖거나 미련을 두는 이상 진정한 대화는 그만큼 어렵다.북을 정말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고 평화공존의 상대로 이끌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대비는 철저해야 할 것이다. 정상회담의 성사에 주력하는 정부입장에서 이런 사건의 발표가 달갑지 않았겠지만 검찰송치 단계에서 밝혀진 이 사건을 두고 북한 역시 시비를 걸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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