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황혼기에 남이 되는 부부, 왜?

중앙일보

입력

주부 김미영(62·가명)씨는 요즘 남편만 보면 화가 치밀어 올라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다. 이유인 즉 퇴직한 남편이 하루 종일 집안에 들어앉아 잔소리를 해대고 있기 때문.

김 씨는 “남편이 사사건건 간섭하고 잔소리하니 시집살이가 따로 없다”며 “우울증에 화병까지 겹쳐 이대론 도저히 살수 없어 심각하게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인생의 황혼기에 남이 되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통계청이 조사한 결과 20년 이상 살아온 부부들이 갈라서는 황혼이혼이 지난 10년 사이에 6배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자기준 이혼건수의 경우 지난해 65세 이상 여성의 이혼이 1251건으로 전년(922건)보다 35.7% 증가했고 지난 1996년 198건에 비해서는 6.3배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과연 황혼기에 접어든 부부들 특히 여성들은 왜 이혼을 선택하고 있는 걸까?

일단 점점 수명이 늘어나면서 이혼도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문가 들은 말한다. 즉 과거에는 수명이 짧아 나이가 들어 부부가 서로 문제가 될 무렵이면 부부 가운데 한 쪽이 먼저 죽어 이혼 수가 적었다는 것.

서양에서도 19세기 전에 이혼이 적었던 이유로 부부 한쪽이 먼저 죽는 수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또 노년기 이혼은 신혼 이혼 등 젊은 부부들의 충동적 이혼과 달리 오랜 세월 쌓인 불신과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경우가 많다.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양정자 원장은 “젊은 시절 여성들은 아이들 때문에 이혼을 포기하고 살다가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곪았던 것이 터지게 되는 것”이라고 전한다.

더불어 경제적으로 안정돼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게 된 중년 부인을 퇴직한 남편이 권위적으로 대하면 부부간 충돌이 빚어진다”고 지적한다.

특히 남편이 퇴직을 한 다음 아내들은 이 겪게 되는 은퇴 남편 증후군은 홧병으로 이어져 우울증과 불안증, 불면증부터 소화불량, 위염, 두드러기를 비롯한 피부 발진 등을 일으켜 황혼이혼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여성호르몬 분비의 저하도 황혼 이혼의 증가에 한 몫 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신경정신학자 루안 브리젠틴 교수는 새로 내놓은 ‘여성의 뇌’라는 책에서 ‘여성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뇌의 구조가 변한다”며 “황혼이혼이 폐경기 에스트로겐 수치가 낮아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은 여성을 더욱 여성답게 하고 정서적으로 순종적으로 따르는 성향을 증가시켜준다. 때문에 이 호르몬이 적어지게 되면 젊은 시절 견뎌냈던 남편의 고집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는 것.

용인정신병원 강대엽 부원장은 “여성호르몬 분비가 적어지면 때에 따라 성격도 강하게 변하게 되고 인내심도 적게 돼 황혼 이혼을 부추기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황혼 이혼을 막기 위해서 서로를 배려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을 만들어 대화를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전한다.

또 부부관계가 더욱 악화되기 전에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강대엽 부원장은 “감정이 악화되면 정신과 상담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부사이에 문제가 생길 경우 조기에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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