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통화내용 조회 문책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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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청와대 측의 보안조사 요구에 따라 국가정보원이 기자와 취재원의 통화내역을 조사했다. 이는 명백한 권한남용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국가안보 위해(危害)방지를 위해 필요할 경우'에 통신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도대체 기자와 그 취재원의 통화가 국가안보에 어떤 위해를 끼친다는 말인가.

당초 문제가 된 보도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외교부, 사사건건 충돌'이라는 제목이다. 해당 기사를 아무리 봐도 뭐가 안보를 위협하는지, 어떤 외교비밀이 담겼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많은 사람은 당초 청와대가 발끈한 이유가 외교부 관리들의 청와대에 대한 불만과 험담이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괘씸죄에 걸린 공무원들을 뒷조사하기 위해 통화내역을 조사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과연 입만 열면 개혁을 외쳐온 이 정권이 도청을 자행해온 과거 정권들과는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기자의 통화내역 조회는 명백한 언론자유 침해다. 보도가 사실과 다르거나 불만이 있으면 얼마든지 바로잡을 길이 열려 있다. 정정.반론을 요구할 수 있고, 소송도 가능하다. 이미 청와대는 언론을 상대로 줄소송을 하는 판이다. 이도 모자라 통화내역 조회까지 하면 결국 정권의 마음에 드는 기사만을 써야 하는가.

파장 확대 이후 국정원과 청와대의 해명도 납득이 안 된다. 국정원은 "통화조회 내용을 청와대에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정수석실에서 외교부 간부들을 조사하면서 통화내역을 들이댔다는데 어떻게 이 말을 믿나. "넘겨짚기식으로 물어본 것"이라는 청와대의 해명도 기이하기 짝이 없다. 이런 식이니 도청인들 안 하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 같은 행태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그동안 도.감청 의혹이 수없이 제기됐지만 아무도 처벌받은 사람이 없어서다. 수많은 정부기관에 의해 불법도청과 통화기록 조회가 행해졌지만 정보기관장이나 실무책임자가 문책당한 예가 없다. 철저한 조사와 책임추궁을 해야 한다. 국회도 별도의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