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폐기 없는 평화체제 부적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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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27일 중국 베이징에서 시작된 6자회담 초반 분위기에 대해 미 국무부는 일단 만족감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의 만남에서 좋은 대화를 나눴다는 게 국무부의 평가"라고 밝혔다. 워싱턴 정가 소식을 알리는 넬슨 리포트도 "베이징에서의 출발이 긍정적"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회담이 북한 비핵화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최근 과속이다 싶을 정도로 잘나가던 북.미 관계에 묘한 긴장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6자회담을 앞두고 시리아에 대한 북한의 핵물질 지원설이 제기됐다. 이달 초 이스라엘이 미국의 정보 지원 아래 시리아 북부지역을 공습한 것은 시리아가 북한과의 협조를 통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의심했기 때문이라고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이 보도했다.

이후 조지 W 부시(얼굴) 대통령은 이 같은 보도의 진위에 대해선 확인하지 않으면서도 "북한이 6자회담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핵 확산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북한(김 부상)은 이 의혹에 대해 "미친 자들이 만든 것"이라며 단호히 부인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부시 대통령은 25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이란 등과 함께 '야만정권(brutal regime)'이라고 비난했다. 다음날 국무부는 이란과 미사일을 거래한 북한 기업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6자회담이 열리는 시점에 맞춰 북한을 계속 자극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데 대해 국무부는 "6자회담과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 잇따라 북한을 자극한 데는 까닭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백악관 사정에 밝은 외교 소식통은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야만정권'으로 규정하고 북한의 핵 확산 문제를 경고한 것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엔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와 관련해 노 대통령이 너무 앞서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며 "부시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가 이뤄지기 전에 평화체제를 거론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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