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 허덕이는 유럽 선진국들/「사회보장제」 비판 눈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노동의욕 꺾고 재정 부담만 키워/개도국 저임아닌 “내탓” 고백 변화
최근 파리본부에서 열린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각료회담은 실업원인에 대한 자기반성과 「성역」으로 분류되던 사회보장제도를 공개 비판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OECD가 2년동안의 고심끝에 지난 7일 내놓은 50여쪽짜리의 「고용에 관한 보고서」는 회원국 전체 노동인구의 8.5%인 3천5백만명이 일자리가 없어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이같은 실업은 인력낭비는 물론이고 사회결속을 해치고 나아가 민주주의제도 자체를 위협하는 위기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같은 실업원인을 그동안 일부 학자나 정치가들이 애용하던 아시아 신흥공업국의 저임금 공세라는 주장을 일축하고 내부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까지의 경제보고서와는 완전히 맥을 달리했다. 국경이 사라진 무역의 국제화와 급속한 기술변화에 국민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면서 일자리를 빼앗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시대가 지난 어제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보호주의가 일시적인 방편은 될 수 있어도 무역의 국제화·자유화가 눈앞으로 다가온 내일 더 아프고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경고했다.
OECD는 유럽국가들의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직업훈련 강화 등 60개 대책사항을 나열하면서 선진국의 자랑이던 사회보장제도에 메스를 대야 한다고 언급했다. 경쟁력있는 노동력을 유지하고 노동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이유가 있을 때는 해고와 고용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부당한 해고는 방지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노동조합이 강한 유럽에서는 거의 「도발」에 가까운 제안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한 최저임금제라면 전체 평균소득에 연계시키기 보다는 한 나라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차이를 두는 방안을 권고했다.
또 사회복지제도가 오히려 노동의욕을 감퇴시키고 지나친 연금혜택으로 국가재정마저 어렵게 만들고 개인과 기업활동을 위축시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냉정하게 분석했다.
OECD의 자기반성론은 사용자의 논리를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또 OECD 회원국 내부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동떨어진 상황이라고 외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제무역이 한정된 부를 챙기는대로 가져가는 「제로섬」 게임으로 본다면 넓게는 신흥공업국,좁게는 우리와 경쟁을 벌이기 위해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파리=고대훈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