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해외논단/핵개발여부 숨겨 실리 챙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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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국제사/보유 확인땐 미 양보 못얻어/시간끌며 「동지」 규합도 노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의 한국전문가들이 북한의 일관된 핵논리와 미국 핵정책의 실패를 대조적으로 지적,주목을 끌고 있다. 한국전쟁 연구서 『한국전쟁의 기원』이 저자 브루스 커밍스 교수(시카고대·동아시아 및 국제사)는 9일 미 볼티모어 선지에 「북한 핵논리」를 기고,북한의 교묘한 핵정책을 분석했다. 한편 『한국의 통일방안』을 저술한 니콜라스 에버스타트 교수(하버드대·경제학)는 이 날짜 워싱턴 타임스지에 「북한핵에 대한 미국의 실수」를 발표,미국의 정책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다음은 두 기고문은 요약이다.<편집자주>
북한이 비이성적인 정권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이와 달리 지난해 3월 NPT 탈퇴 위험에서부터 지금의 국제위기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의 핵논리를 갖고 이를 고수하고 있다.
북한의 핵논리는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외부세계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여부를 모르게 하는 것이고,둘째는 국제문제에서 무능함을 보이고 있는 빌 클린턴 미국정부로부터 더 많은 이익을 얻어내는 것,세번째는 시간을 끌어 북한을 지지하는 나라를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이같은 논리에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 의문은 ▲북한이 과연 핵무기를 개발,보유하고 있느냐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이를 사용할 것인가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완전한 사찰이 이뤄지면 이같은 의문은 해소될 것이다. 그러나 IAEA 사찰결과 북한의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것이 밝혀지면 북한은 더이상 국제적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반면 핵무기 보유 사실이 밝혀지면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더이상 양보를 얻어내 이익을 챙길 수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핵무기 개발과 관련,모호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IAEA 사찰팀을 적절한 시기에 방해,완전한 사찰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다음으로 북한이 미국과 줄다리기를 할 수 있는 부분은 과연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북한은 이와관련한 의도에 대해서도 모호성을 도입,새 이슈를 만들어 낼 것이다.
왜냐하면 냉전시대의 핵강대국들은 핵위협으로 전쟁억지력을 상호 유지할 수 있었으나 북한처럼 적대국으로 둘러싸여 있는 작은 나라의 경우 이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억지력을 유지할 수 있다.
북한이 또 핵줄다리기에서 조금씩 양보를 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은 가능하면 NPT의 효력이 정지되는 내년 4월까지 북한 핵문제를 끌고가서 파키스탄·인도 등 핵확산 기도국들의 협력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다.
북한은 나아가 인도 등을 「우방」으로 확보하게 되고 NPT 효력문제가 발생할 경우 미국과 IAEA의 정보교환을 문제삼을 수 있을 것이며 IAEA를 미국의 이익에 동원하지 못하도록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북한이 NPT 탈퇴를 위협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것은 이같은 북한의 핵논리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정부가 이같은 북한의 핵논리를 이해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대북한 핵정책을 전면 수정,세기적 위기를 쉽게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워싱턴=진창욱특파원>
◎니콜라스 에베스타트 하버드대 교수·경제학/미 안이한 대응 실수 연발/「핵=정권유지」 현실 파악못해/「카드」 모두 내놔 기만 살려줘
북한 핵문제를 해결을 위해 세계가 들썩거리고 있지만 분위기는 갈수록 위기로 치닫고 있는 듯하다.
대북 핵사찰에 실패하고 경제제재가 추진되는 등 「악순환」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이제 한반도 주변에 또다시 전운이 감도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그동안 미국은 뭘 했는가.
미국은 그동안 북한 핵문제를 다루면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첫째,상대방의 실체와 목적을 잘못 판단했다.
김일성은 거의 반세기에 걸쳐 정권을 장악해온 독재자다.
독재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하려든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는 것은 정권 영속과 직결된 생사가 걸린 지상과제였다.
그런데도 미국은 충분히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안이하게 판단한 것이다.
북한이 어떤 일이 있어도 결단코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는 「현실」을 클린턴 행정부가 깨달은 것은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갈 무렵인 불과 한달전쯤이다. 첫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다.
두번째 실수는 목소리만 컸다는 점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려하면 종말이라는 운명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가원수로서는 전례가 없는 이런 노골적인 엄포를 하고 수개월이 지나 정작 북한 핵문제가 표면화되자 강경책은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논란끝에 「채찍」이라고 내놓은 것이 고작 방어용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한국에 배치한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긴장이 한창 고조된 지난주에도 시큰둥한 어조로 유엔이 북한이 제재하라고 요구했다. 「총대」를 멜 시기와 그 강도를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이다.
셋째,결정적인 대결을 앞두고 동지들이 등을 돌리게 했다.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일본밖에 더 있는가.
그런데 미국은 일본에 대해 무역문제를 들어 끊임없이 압력을 가해왔다.
중국에 대해서도 인권문제에 고리를 걸어 승강이를 벌였다.
무역역조나 인권문제가 중요한건 틀림없지만 시기를 잘못 택했다. 사안의 완급과 상황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때문이다.
넷째,협상이 미숙했다.
북한에 핵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주고받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처음부터 주는데만 급급했다.
팀스피리트훈련 중지,미·일과의 관계 정상화,경수로 지원 및 대북경협 확대 등 줄 수 있는 「카드」는 모조리 꺼내 보였다. 북한이 기고만장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다섯째,끊임없이 이쪽 약점을 노출시켰다. 소말리아에서 실패하고 보스니아 사태를 처리하는데 우유부단했으며,부시 대통령 암살을 기도한 이라크에 대해 미지근하게 대응했다.
행정부에서는 중구난방으로 미 군사력 감축을 추구했다.
이러니 북한이 미국을 「종이 호랑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은 실수연발로 상황이 악화된 가운데 미국은 제재를,북한은 전쟁을 호언하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은 유사시 한국을 총력 방위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 다짐은 결코 시행착오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미국은 깊이 명심해야 한다.<워싱턴=김용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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