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안도현 지음.이혜리 그림.계수나무.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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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갈참나무에서 도토리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 “캄캄해. 너무 무서워.” 떨고 있는 도토리에게 낙엽이 “우리가 지켜줄게”라고 속삭인다. 낙엽들은 추위에 떠는 도토리의 이불이 되어주고, 도토리를 주우러 온 할아버지 눈에 띄지 않게 숨겨준다. 도토리는 낙엽 밑에서 밤에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쥐로부터도 몸을 지킬 수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숨어 살아야 하지? 차라리 쥐 먹이가 되는 게 낫겠어.” 투정하는 도토리를 낙엽이 달랜다. “안 돼. 너는 끝까지 살아남아야 해. 그래야 우리도 다시 태어나서 너와 우리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어. 그게 우리들의 꿈이야.”
도토리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관계를 맺는다는 게 뭐지?”
낙엽이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건 서로 도와주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뜻이야. 네가 갈참나무로 다시 태어나는 게 우리를 돕는 길이야.”
겨울이 되었다. 눈이 내렸다. 낙엽이 썩기 시작했다. 도토리는 자신이 썩어가는 낙엽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괴로웠다.
“아니야, 도토리야. 네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걸. 우리는 정말 행복하단다.” 낙엽들이 도토리를 껴안으며 말했다.
바로 그때 도토리의 작은 몸이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점점 뜨거워졌다. 온몸이 터질 듯 아팠다. 이미 썩은 낙엽도, 부서져 가루가 된 낙엽도 마지막 힘을 다해 도토리를 껴안았다. 어느 순간 도토리의 몸에서 쑤욱 연초록 새싹이 돋았다. 도토리는 햇빛이 내려오는 쪽으로 손을 힘껏 뻗었다.
“이게 바로 낙엽들이 말한 거로구나.”
숲 속에 수없이 많은 어린 갈참나무들이 출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