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서로 돕는 거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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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15면

관계
안도현 지음.이혜리 그림.계수나무.44쪽

어린이책 추천도서

톡.
갈참나무에서 도토리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 “캄캄해. 너무 무서워.” 떨고 있는 도토리에게 낙엽이 “우리가 지켜줄게”라고 속삭인다. 낙엽들은 추위에 떠는 도토리의 이불이 되어주고, 도토리를 주우러 온 할아버지 눈에 띄지 않게 숨겨준다. 도토리는 낙엽 밑에서 밤에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쥐로부터도 몸을 지킬 수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숨어 살아야 하지? 차라리 쥐 먹이가 되는 게 낫겠어.” 투정하는 도토리를 낙엽이 달랜다. “안 돼. 너는 끝까지 살아남아야 해. 그래야 우리도 다시 태어나서 너와 우리가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어. 그게 우리들의 꿈이야.”
도토리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관계를 맺는다는 게 뭐지?”
낙엽이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건 서로 도와주면서 함께 살아간다는 뜻이야. 네가 갈참나무로 다시 태어나는 게 우리를 돕는 길이야.”
겨울이 되었다. 눈이 내렸다. 낙엽이 썩기 시작했다. 도토리는 자신이 썩어가는 낙엽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괴로웠다.
“아니야, 도토리야. 네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걸. 우리는 정말 행복하단다.” 낙엽들이 도토리를 껴안으며 말했다.
바로 그때 도토리의 작은 몸이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점점 뜨거워졌다. 온몸이 터질 듯 아팠다. 이미 썩은 낙엽도, 부서져 가루가 된 낙엽도 마지막 힘을 다해 도토리를 껴안았다. 어느 순간 도토리의 몸에서 쑤욱 연초록 새싹이 돋았다. 도토리는 햇빛이 내려오는 쪽으로 손을 힘껏 뻗었다.
“이게 바로 낙엽들이 말한 거로구나.”
숲 속에 수없이 많은 어린 갈참나무들이 출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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