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전 안전 '빨간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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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본에서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면 현재 수준의 내진 설계로는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을 충분히 보장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21일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에 따르면 최근 니가타(新潟) 지방의 원자력발전소를 강타했던 대형 지진이 다른 지역에서 발생할 경우 일본의 거의 모든 원전이 애초 예상됐던 수준보다 훨씬 더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7월 16일 진도 6.8 규모의 강진이 발생한 니가타에는 가시와자키 가리와(柏崎刈羽) 원자력발전소의 벽에 균열이 생기면서 핵연료 저장소에 물이 고이고 소량의 방사능이 누출되는 중대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9월 새로 개정된 원전 내진설계 기준에도 부합했지만 실제로 강진이 발생하자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고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최근 도쿄전력을 비롯한 전국 12개 원전사업자를 통해 전국 51개 원전의 내진 성능을 재조사한 결과 이바라키(茨城)현의 일본원자력발전소 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 50개는 모두 당초 예상치보다 크게 흔들릴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는 가리와 원전이 받은 6.8 규모의 충격을 받았을 때 다른 원전들이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측정하는 진동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뤄졌다.

시뮬레이션 결과 이들 원전이 가리와 원전이 받은 만큼의 충격을 받았다면 흔들림의 정도가 애초 설계했을 때 계산했던 최고치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최고치를 넘어서도 내진 설계상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해뒀기 때문에 안전을 위협하지는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일본 남부 시마네(島根)현을 비롯해 17곳의 원전은 강진이 일어나도 버틸 수 있는 허용치까지의 여유가 충분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가리와를 덮친 지진 이상의 강진이 발생하면 원자로 압력용기나 제어봉, 배관과 같은 '심장부'가 부러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리와 원전이 사고 발생 두 달이 넘도록 피해 복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가리와 원전 바로 밑이 활단층(活斷層)이라는 사실이 처음 밝혀지면서 땅 밑의 지질 조사에만 수개월이 걸리고 파손 정도가 심한 것도 복구를 지연시키고 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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