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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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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마천루’란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80년대였다. 1885년 미국 시카고에 강철 골격을 사용해 지은 최초의 고층 건물 ‘홈 인슈어런스’가 세워지면서다. 60m, 10층짜리 이 건물을 보고 당시 시카고 시장 리처드 댈리는 “다음 세기를 미리 보고 있는 듯하다”며 감격했다.

현재 세계 최고층 빌딩은 대만의 ‘타이베이 101’(509m 101층)이다. 최고층 10위 내 건물들은 모두 1990년대 중반 이후 세워졌다. 1931년 완공된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만이 8위로, 예외다. 지난 10년간 세계적인 초고층 빌딩 건축 붐을 보여 준다. 특히 아시아가 활발했다. 건설 중인 중동의 버즈 두바이(800m 이상), 러시아의 타워 오브 러시아(649m)는 또 기록을 경신할 예정이다.

초고층 건물들은 개발과 성장의 랜드마크다. 펜트하우스가 부의 상징인 것처럼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군림·지배·우월성의 확인 욕망도 읽힌다. 물론 비싼 땅값에 최대 수익을 올리려는 건물주의 욕구도 있다.

비판의 소리도 커지고 있다. 교통난, 환경파괴, 에너지 과소비, 안전 문제 등이 제기된다. ‘블루 스카이 이코노믹스 이론’도 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완공과 30년대 대공황, 70년대 세계무역센터 빌딩 완공과 이후 경제불황, 98년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타워 완공에 이어진 아시아 금융 위기 등이다. 초고층 빌딩을 지을 때는 호황이고, 건물이 완공될 때는 불황의 시작이 많다는 얘기다. 100층 높이, 세계 10위권 내 고층 건물이 5개나 세워지고 있는 우리 상황에 대해서도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실 무한의 수직을 추구하는 것은 건축만이 아니다. 요즘은 ‘길고 높고 가는 것’이 미학의 핵심처럼 보인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용모에 대한 최고 찬사가 ‘이기적인 기럭지(큰 키라는 뜻)’다. 마른 모델 퇴출 논쟁이 나오지만 비현실적으로 길고 가는 몸에 대한 선망은 깊어만 진다. 미감 자체가 바뀌기도 한다. 최근 탄생 30주년을 기념해 복원된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브이’의 피규어(인형)는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신체비례를 보인다. 예전의 10등신 로봇이 25등신 정도로, 훨씬 늘씬해졌다.

마천루 열풍은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다 멸망한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일상 속 미감에서도 수직·높이에 대한 강박적 선호가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