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산책>세 악사-파블로 피카소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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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피카소의 화집을 뒤적이던 남자가『이게 뭐 잘 그린 그림이라고…』라고 중얼거렸다.그 말에는 잘 그려진 그림이라면 아름답게 느껴져야 할 것이 아니냐는 짜증이 담겨 있다.그러나 20세기 미술사의 채점표에서 볼 때 아무나 보아 아름답다고 감탄할만한 그림은 거의 낙제점에 가깝다.
西歐 미술사의 흐름은 답습과 계승,개혁과 파괴,변화와 발전의세 유형으로 기술될 수 있다.아름다운 그림은 답습과 계승의 흐름으로써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에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개혁과 파괴는 위험 부담이 큰 역류를 말한다.때로 불안 한 고득점을 기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중이 줄어들다가이윽고 사라져간다.그래서 최고점은 변화와 발전에 주어진다.변화란 그레코로만의 흐름,즉 인간 중심의 합리주의 사상이란 뼈대는그대로 둔 채 그 표현방식을 바꾸 는 것이고,발전이란 그 흐름의 물길을 확장하는 것이다.
20세기 미술의 대명사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의 가장 큰 공적은 콜라주와 입체주의에 있었다.콜라주는 붓으로 화면 위에 그림을 그리는 대신 풀로 붙인다는 뜻이다.아무리 그림을 잘 그리더라도 실물보 다 더 실물답게 그릴 수 없다는 절망에서 실물대신 실물의 이미지인 인쇄된사진이나,나아가 실물 자체가 화면위에 부착되었다.또 입체주의는대상을 육면체등 기하학적 단위로 분해해 그리거나,눈에 보이지 않는 뒷면을 동시에 화면 위에 표현 하는 방식이다.이 과정에서아프리카 조각의 과감한 추상형체가 차용되기도 했다.
그런데 콜라주와 입체주의는 사실상 변화와 발전의 흐름이 아니었다.콜라주는 붓으로 그리는 그림과 진흙을 붙여 만드는 조각의경계를 파괴했다.그리고 입체주의는 카메라의 평면시각과 고전적 미의 관념을 개혁했다.그런데도 피카소의 방식은 변화와 발전으로인식되었다.피카소의 기막힌 작전이 주효했던 것이다.
스페인 태생의 피카소는 야생동물처럼 본능적으로 세계 미술의 메카인 파리 화단의 흐름을 냄새맡았다.친구들을 번갈아 화랑에 보내 피카소의 그림을 찾게 해 피카소 작품의 수요를 창출하는 한편 파리 화단의 총아인 브라크를 동반자로 내세워 콜라주를 완성했다.세잔을 발굴해 그의 경험적 추상의 떡잎에 자신의 싹을 접목시켜 입체주의를 완성할 때도 피카소는 브라크를 방패막이로 썼다. 원래 입체주의(cubism)란 말은 브라크의 작품 『에스타크의 나무들』을 본 루이 복셀이 야유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었다.그래서 욕은 브라크가 먹고 칭찬은 피카소에게 돌아갔다.또아프리카 조각의 개념도 드랭.마티스.블라맹크 등이 분 위기를 만들어 놓은 후에 피카소는 조심스레 『아비뇽의 아가씨들』에 옮겨 놓았다.1907년의 일이었다.그러나 아폴리네르.브라크 등이맹렬히 비난하자 피카소는 1937년까지 이 그림을 화실 구석에처박아두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지런히 그리스의 신화나 로마네스크풍의 그림,마네.세잔등 정통파의 흐름을 자기화해 작품에 옮겨 심었다.말하자면 들짐승 같은 생존 본능과 자기관리의 성공이 피카소를 천재중의 천재로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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