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희기자의TV훑기] ‘반쪽 한국인’ 열연하는 ‘황금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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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갖곤 안돼!”

한국으로 시집 온 라이따이한 진주(이영아)는 전통 음식의 대가 복려(정혜선)에게 떡 만드는 법을 전수받고 싶다고 간청한다. 그러나 복려는 “외국 사람한테 솜씨 전수할 생각 없다”며 내친다. 아버지가 한국인인 진주는 “반은 한국 사람”이라고 호소해보지만 잠시 머뭇거리던 복려는 이내 ‘반쪽’으론 안 된다며 거절한다. (SBS 주말드라마 ‘황금신부’ 15일 방송 내용)

 한국인 아버지를 찾기 위해 방송에 출연한 진주는 울면서 말한다.

 “아버지 원망하는 마음 없어요. 바라는 것도 없어요. 그냥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엄마를) 만나만 주세요. 부탁해요. 꼭 부탁해요.” (16일 방송 내용)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도 그 장면에선 딱 멈출 만큼 심금을 울리는 장면이었다. 눈물 연기의 덕을 본 것일까. ‘황금신부’의 16일 시청률은 20%를 넘어섰다.

 ‘반쪽’ 한국인이 조연도 아닌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황금신부’의 인기는 의미가 크다. 여러 인종, 여러 민족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황금신부’는 주인공인 라이따이한의 순수함에만 초점을 맞출 뿐 ‘지금, 여기’ 상황과 거리가 멀고, 베트남을 깔보는 듯한 시선도 알게 모르게 들어 있다는 비판을 종종 받는다. 그럼에도 21세기 한국인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순기능은 인정해야 할 듯하다. 시청자들이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라이따이한의 상처를 피부에 와 닿게 느끼지 않겠는가.

 최근 제작진이 베트남 행 티켓을 걸고 벌인 ‘베트남 신부 사연 공모’. 지체장애인인 자신에게 시집와 임신까지 했고, 고향이 그리워 ‘황금신부’만 보면 리모컨을 놓지 않는 아내를 형편이 어려워 베트남에 한번도 보내주지 못했다는 사연을 올린 시청자가 티켓을 받았다. 공황장애가 있는 준우에게 시집 온 진주처럼 수많은 베트남 여성이 한국 여성에겐 외면 받는 신랑감들과 가정을 이루고 산다.

 ‘반쪽’이든 ‘온쪽’ 베트남(혹은 다른 나라)인이든, 이 땅에서 더불어 사는 한 그들도 ‘시청자’로 대우 받아야 한다. ‘황금신부’ 다음에는 한국인(정체는 무얼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주인공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땐 그들에 대한 시청자의 마음도 한 단계 더 열려 있을 듯하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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