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타파] 기록으로 본 2000~2004 바둑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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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계승의 대가는 누구일까. 조훈현9단이나 이세돌9단 같지만 실은 이창호9단이다.

반집 승부의 성공률에서 가장 앞서는 기사는 이창호9단일까. 아니다. 목진석7단이다. 이창호는 이세돌9단에게도 뒤진다.

억지가 아니다. 이것은 2000년 이후 4년간의 기록에 나타난 실제 결과다.

조훈현9단은 전신(戰神)으로 불릴 만큼 싸움에 능하다. 비금도의 사나운 독수리 이세돌9단 역시 조훈현9단이 울다 갈 정도로 전투적이다. 유창혁9단은 유명한 공격수이고 이창호9단은 천하가 인정하는 계산과 수비의 천재다. 따라서 불계승이라면 당연히 이세돌이거나 조훈현이 최고이고 유창혁이 중간, 이창호는 하위일 것이라고 추리할 수 있다. 반집 승부라면 이창호를 따라올 기사는 없을 것이다.

웬만한 바둑팬이라면 다 알고 있을 이 같은 통설은 그러나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계산력이 감퇴한 대신 펀치력을 키운 이창호9단의 변신이 뚜렷하게 감지되는 2000년 1월 1일부터 2004년 1월 26일까지의 기록을 정리해봤다.

◆4년간 최다승은 최철한=2백25승의 최철한6단이 다승1위를 차지해 그의 최근 급상승이 준비된 것임을 보여준다. 2백23승의 이세돌이 2위, 2백16승의 이창호가 3위였다. 조훈현과 유창혁은 6,7위. 여성으로는 루이나이웨이9단과 조혜연4단이 1백24승으로 나란히 2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서봉수9단(1백10승)은 31위로 밀렸다.

◆누가 가장 많이 졌나=4년간 패배 1위는 98패의 조훈현, 2위는 97패의 이세돌이다. 5위는 93패의 유창혁. 기복이 심한 정상급 3인의 그늘을 보여준다. 그외 20위까지는 모두가 여성기사들이어서 아무래도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많은 승리를 선사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승률은 이창호9단이 1위=1백승 이상을 거둔 상위 40명 중 80% 이상의 승률을 기록한 기사는 한명도 없었다. 이창호9단이 78%로 1위, 최철한6단이 76%로 2위. 그다음은 박영훈5단.윤성현8단의 순이었다.

◆최다 KO승도 이창호9단=2백16승 중 1백41승을 불계로 챙긴 이창호9단이 1백30승의 조훈현9단을 제치고 최다 KO승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KO율에선 조훈현(68.4%)이 이창호(65.3%)를 제쳐 강펀처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세돌9단은 1백4승으로 3위, 유창혁9단은 96승으로 4위, 그다음 안조영7단.윤성현8단.최철한6단.송태곤6단의 순이었다.

◆불계패의 일인자는? =58패의 이세돌9단이다. 중과부적일 경우에도 물러서기를 싫어하는 이세돌이 역시 불계패가 많았다. 서봉수와 송태곤이 51패와 50패로 5, 6위. 그외 10위까지는 모두 여성기사들이었다.

◆누가 반집승을 가장 많이 거뒀나=신산(神算)이창호9단과 '반집의 승부사'란 별명을 갖고 있는 안조영8단이 9승으로 나란히 1위를 차지했다. 3위는 6승의 유창혁9단. 계산력이 이창호에 필적한다는 박영훈과 여성기사 윤영선, 그리고 이세돌이 5승으로 그 뒤를 이었다. 반집승부의 성공률에선 4승무패의 목진석7단이 1위. 이세돌도 71%의 성공률을 보여 이창호(60%)를 오히려 크게 앞섰다.

◆반집패는 조훈현이 압도적 1위=조훈현9단은 무려 14번 반집패를 당해 노장기사의 약점이 어디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나이와 계산력은 반비례하는 것이다. 그 뒤를 유창혁(9패), 이창호(6패), 안조영(6패) 등이 잇고 있어 반집승을 많이 거두는 기사는 많이 지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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