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진위 보도 신중히/윤철규 문화1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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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미술품을 다루는데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문제가 감정에 관한 것이다. 수십년간 고미술을 전공한 학자들도 진위에 대해서는 섣부른 판정을 미루기 일쑤다.
더욱이 역사의 단절,오랫동안의 무관심 등으로 고미술분야 여러곳에서 정돈된 이론이나 학설들이 아직 정립되지 않고 있어 문제를 한층 어렵게 하고 있다.
예컨대 비록 그림 한폭을 감정할 때도 그것을 배출한 시대사상·사회분위기·기법·인접한 나라의 회화발전사 등 다양한 분야에 정통한 지식을 갖춰야만 진위를 분명하게 가릴 수 있다. 그만큼 쉽지 않다.
미술사연구를 문화사연구의 꽃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일본에서 되찾아왔다는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첩에 대해 유독 본지만 보도에 신중을 기한 것도 사실 진위감정을 속단하는데 따르는 어려움 때문이었다.
본지는 새로운 혜원 풍속화첩의 존재를 지난주에 이미 처음 확인했다. 혜원은 18세기 풍속화 대가로서 조선시대 상류사회의 풍류와 로맨스를 시정어린 필치로 그려 남겼던 소중하기 그지없는 작가다.
본지는 혜원 속화첩의 실물을 확인하고 실제 크기만큼 복사된 컬러사진도 함께 입수했다. 새로 출현한 화첩이 혜원의 진품으로 확인된다면 회화사적인 가치뿐 아니라 생몰연대는 물론 춘화도 때문에 궁정에 소속된 도화서에서 쫓겨났다고만 알려진 혜원의 일생에 대해서도 상당부분 새로운 내용을 제공할 수 있는 자료였다.
본지는 입수한 사진자료를 여러 회화사 전공 학자들에게 제시하며 학계의 의견을 취합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학자들이 사진에 의한 판단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학자적 정열과 양심,그리고 소신에 따라 부정적 의견을 밝혀주었다.
그러나 이들 학자중 상당수는 학계를 통한 공개가 아니며 또 상인소장품이란 점등을 이유로 이름을 밝히기를 꺼렸다.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취합하면서 고미술품의 공개를 둘러싸고 한편으로는 그동안 언론에서 한건주의라는 과당경쟁 때문에 본의아닌 실수나 나아가 피해까지 주었던 사실을 냉정하게 생각했다. 따라서 이 화첩에 관련된 검증을 계속 펴나가되 보도에는 신중을 기하자는 내부방침을 결정했다.
이제 진위문제가 정식 제기됨으로써 찬반의견을 공정히 수렴하는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 그와 아울러 고미술품의 감정이 결코 쉽지 않으며 그래서 더욱 보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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