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패륜이 있을 수 있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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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범인이 아들로 밝혀진 한약상 부부 피살사건은 할 말을 잃게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도 갖가지 끔직한 패륜이 빚어진바 있으나 이번 사건만큼 충격적인 내용은 없었다. 더구나 어머니까지 함께 살해한다는 것은 존속살인사건 중에서도 극히 드문 경우에 속한다.
또한 이번 사건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인 것은 부모 살해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계획적인 것이었고 살해행위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각각 50,40곳이나 찌를 정도로 엽기적이었으며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살해뒤에 불을 지를 정도로 가증스러웠다는 점 때문이다. 존속살인은 순간적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일어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며 그 경우 곧 후회와 죄책감으로 증거인멸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고 공백상태에 빠지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이번 사건을 보편적인 세태의 반영이라고 볼 수는 없겠으나 우리 사회의 윤리와 도덕성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한 경종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번 사건은 자식의 능력과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기대와 요구,그리고 학력만들어내기식의 교육이 엄청난 비극을 가져올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고 있다. 범인의 부모는 아들에게 더 좋은 학력을 얻어주기 위해 미국유학까지 보냈으나 아들의 능력과 적성은 그러한 부모의 기대를 감당할 수 없었다. 거기에서는 오는 갈등이 결국은 비극의 씨앗이 된 것이다.
최근 대학입학이 어려워지자 많은 가정에서 어린 자녀를 외국에 유학시키고 있다. 부모의 이러한 무리한 교육열은 자녀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어 그를 해소하기 위한 손쉬운 수단으로서 도박에 손을 대게 되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실제로 이번 사건의 범인뿐만 아니라 적지않은 다른 유학생들이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도박과 향락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무리한 유학이 자식의 장래를 오히려 망칠 수 있다는 점을 각 가정은 이번 기회에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자식이 이런 끔찍한 패륜을 치밀하게 계획할 수 있었는지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범인은 성장과정을 통해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받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뿐이다.
자식을 물질적으로 여유롭게 기르는 것이 결코 올바른 자식사랑은 아닐 것이다. 올바르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식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우리들 모두는 자신들의 자녀 사랑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들의 자식교육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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