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체제 선전공연 대통령이 왜 봐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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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아리랑 공연은 북측에서 만든 상당히 자랑스러운 공연작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런 점에서 존중하고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정권은 북방한계선의 재획정이 포함된 북한 측 요구를 정상회담에서 논의하겠다는 위험천만한 안보관을 드러내 충격을 준 바 있다. 그러더니 이번엔 북한의 대표적 체제선전물인 아리랑 공연을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남측 대표단이 관람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번 정상회담을 어디로 끌고 가려 하는지 정말 우려된다.

아리랑 공연은 전체주의 북한 체제의 정당성과 김일성·김정일 부자 우상화를 위한 선전물이다. 최근 공연작에도 ‘우리의 총대’ ‘선군 아리랑’ 등의 제목이 들어 있다. 특히 공연 마지막에는 ‘장백산 줄기줄기 피 어린 자국…’이란 김일성 장군의 노래가 나온다. 이런 공연을 대통령이 보고 박수까지 치겠다는 말인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이 정권은 북한의 비위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작심한 모양이다. 아리랑을 ‘북한이 자랑스러운 공연으로 생각하니’ 남측도 존중해야 한다니 말이 되는가. 우리와 대립되는 그들의 체제에 박수를 쳐 주고 싶다는 말인가. 공연을 안 본다고 정상회담이 깨지나? 반면 북한이 싫어하니까 인권 문제는 꺼내면 안 되고, 북한이 원하는 지원은 모두 해야 한다니 이런 회담이 어디 있는가. 그런 정상회담이라면 할 필요가 없다. 이런 식이라면 통일부나 국정원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북한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될 것 아닌가.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의 목표를 북핵 문제 해결 등 군사적 긴장의 완화와 북한 주민의 고통 해소에 두어야 한다. 아리랑 공연 관람같이 아무런 실효성도 없으면서 남남 갈등이나 불러일으킬 게 뻔한 사안을 놓고 왈가왈부 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특히 폭발성이 높은 이런 미묘한 사안을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 불쑥 제기하는 행태도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 투명성이 없이는 결코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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