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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의 후계자가 된 홍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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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문:덩샤오핑(鄧小平)의 후계자는?

답:“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그리고 후진타오(胡錦濤) 현 주석.”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답은 맞았다. 그러나 최근 중국인들 사이에서 이 답은 ‘홍콩’으로 바뀌었다. 홍콩의 유명 언론인 추리번(邱立本)은 덩이 경제적 개혁개방을 선도했다면 홍콩은 이를 받아 중국 사회의 개혁·개방을 주도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덩의 개혁·개방으로 일궈낸 경제적 성과 위에 홍콩의 선진 시스템과 의식 주입 작업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후원자는 중국 정부다.

중국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일했던 류칭쑹(劉靑松). 핵심 금융 엘리트로 꼽히는 그는 홍콩 정부의 ‘(중국)우수 인재 양성 프로그램’에 따라 2003년 홍콩으로 연수를 떠났다. 그 뒤 4년 동안 홍콩 증권거래소 기업상장 관리 부문 부담당으로 일했다. 여기서 그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금융 전문가 수백 명을 만났다. 미국인과 영국인 상관 밑에서 하루 10시간 넘게 일했다. 지난해 말 홍콩을 떠나면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선진 시스템과 법치정신, 그리고 전문성…. 중국의 미래를 결정할 대부분을 홍콩은 이미 갖고 있다. 내가 홍콩에 온 이유와 돌아가 무엇을 할지를 알았다.” 그는 현재 상하이(上海)·광둥(廣東)과 함께 중국 3대 경제권으로 부상 중인 톈진(天津) 시의 금융산업 육성을 지휘하고 있다.

류처럼 인재양성 프로그램에 따라 홍콩 정부 각 부처와 업계에서 연수하는 중국 공무원과 민간인이 매년 수백에서 수천 명을 헤아린다. 모두 해당 부문 최고 엘리트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기업으로 눈을 돌리면 홍콩의 역할은 더 커진다. 지난해 8월 광둥성 주하이(珠海) 국제공항관리 유한공사는 공항 경영을 통째로 홍콩 첵랍콕 공항 당국에 맡겼다. 시설은 일류 공항 못지 않은데 적자가 누적되었기 때문이었다. 장둥성(張東升) 부사장의 얘기가 솔직하다. “시설만 그럴듯하다. 경영기법은 낡았고 직원들은 고객이 뭔지도 모른다.” 그는 요즘 현장에서 직원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회사의 미래는 홍콩식 소프트웨어 수용 정도에 달려 있다.”

이렇게 홍콩 기업에 한 수 지도를 받은 중국 기업은 지난해 말 현재 1만 개가 넘는다. 중국 경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상하이와 광둥 지역 대기업 대부분은 어떤 형식이든 홍콩 기업에 경영 문제를 자문했다. 이런 추세면 중국 기업의 홍콩식 선진 경영기법 체득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중국인들의 생활과 의식개혁도 예외가 아니다. 이는 홍콩의 비정부기구(NGO)가 주도하고 있다. 환경보호 활동을 주로 하는 ‘녹색평화’의 활약이 좋은 예다. 베이징(北京)과 상하이·광저우(廣州) 등 3곳에 지사를 둔 이 단체는 얼마 전 베이징에서 유전자조작 식품의 위험성을 알려 엄청난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일본의 한 식품회사가 중국에 유전자조작 식품 수출 사실을 실토하고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했을 정도다. 이로 인해 중국인들의 환경의식이 이전보다 10% 이상 높아졌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렇게 중국 전역을 돌며 환경보호와 아동학대 방지, 보육문제 등 중국 사회 문제점을 지적하고 주민들의 의식개혁을 주도하는 홍콩 NGO만 1000개가 넘는다. 중국 정부는 이들의 활동을 대부분 묵인한다. 정치적 목적만 없다면 의식 개혁에 이보다 더한 보약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덩은 25년 전 홍콩 반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베이징을 찾은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에게 “홍콩을 되찾지 못한다면 역사의 죄인”이라며 역정을 냈다. 그 이유가 꼭 영토와 주권 문제만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중국인들이 덩을 최고 지도자 반열에 올려놓고 경외를 표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최형규 홍콩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