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기자의영화?영화!]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해지는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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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0대 자녀가 있는 어느 선배가 그러더군요. 저녁에 집에 갈 때면 과자 같은 자잘한 걸 곧잘 사 들고 들어간다고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것도 잠깐”이라는 겁니다. 아이들이 더 크면 이런 작은 선물로 만족시키는 건 어림도 없다는 거죠.
 
주변에서 보면, 웬만한 중산층 부모 노릇의 커트라인은 나날이 높아지는 듯합니다. 먹이고, 입히고, 놀아주는 건 기본이고, 때가 되면 유명하다는 과외학원 알아봐야지, 조기유학이라도 가고 싶어하면 허리띠를 졸라매서라도 학비를 마련해줘야 하더군요. 그렇게 주고, 주고, 또 주면서도 대개 남만큼, 내 속 시원히 다 못해준다고 아쉬워들 합니다.

 영화 ‘마이 파더’(상영 중·사진)는 이와 정반대 편에 있는 부모 얘깁니다. 주인공 제임스 파커(다니엘 헤니)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된 청년이지요. 양부모의 사랑을 받고 잘 컸지만, 주한미군으로 자원해 친부모를 찾으려 합니다.

그렇게 만난 아버지(김영철)는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갇힌 처지입니다. 더구나 거짓말쟁이지요. 자신이 저지른 일이 마치 정당방위였던 것처럼 양아들을 속입니다.

 생부를 찾았다고 기뻐한 것도 잠시일 뿐, 파커는 실망하고, 속상하고, 괴로워합니다. 왜 나만 노력해야 하느냐고 울분을 터뜨리기도 하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다음입니다. 파커는 이런 아버지를, 거짓말쟁이에 살인범인 아버지를, 어느 순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불현듯 연인을 향해 사랑한다고 고백할 때의 마음이 떠오릅니다. 이런저런 조건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는 줄 압니다. 그냥 네가 좋아, 라는 마음이 아닐까요. 돌아보면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도 비슷한 듯합니다.

 2시간 가까운 상영시간 동안 파커의 마음속에 벌어진 일을 몇 줄로 간추리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대신 인상적인 장면을 소개하지요.

파커는 아버지가 젊은 시절 기타리스트로 일했다는 미군부대 주변의 술집을 찾아갑니다. 거기서 환상을 체험합니다. 지금과 달리 젊은 모습의 아버지가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음악을 연주하고, 자신도 어느새 그 곁에서 나란히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결코 벌어진 적 없는, 벌어질 수도 없는 일이지만 아버지에 대한 파커의 마음을 상징하는 듯했습니다. 나란히 서 있는 상상만으로 행복해지는, 그 존재만으로도 고마운, 바로 연인을 생각할 때의 마음 같은 거죠.

 이 영화에는 민감한 얘기가 꽤 여럿 들어 있습니다만 무리하게 욕심내지 않고 차분하게 얘기 전체를 이끌고 가는 시선이 돋보입니다.

부모 노릇도, 어떤 세상살이도 무리해서까지 노력하는 게 최선만은 아닐 듯합니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이는 한가위 명절을 앞두고 든 생각입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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