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표추적/상무대 국정조사 “암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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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융거래 비밀보호」로 난감/“은행서 자료거부땐 고발” 으름장
오는 21일부터 실시되는 상무대 정치자금 의혹 국정조사의 핵심은 계좌추적이다.
정치자금이 정치권에 실제로 들어갔는지의 여부를 밝힐 수 있는 열쇠가 곧 계좌추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지난 16일 확정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명령 시행령에서 금융거래 사실까지도 비밀보장 대상으로 삼는 등 엄격한 보호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과연 수표추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 일고 있다.
국회 법사위 국정조사계획서 작성소위원회는 지난달말 잠정합의를 통해 우선 조기현 전 청우종합건설 회장이 받은 상무대 공사대금 2백27억원 가운데 1백89억원에 대해 계좌추적을 하기로 했다.
법사위는 주택은행 본점과 여의도·원곡지점,국민은행 여의도지점 등 조씨가 돈을 분산입금시킨 4개 점포에 대해 예금계좌 자료제출을 요구할 방침이다.
법사위는 대체로 두가지의 추적방안을 생각해놓고 있는데,첫째는 조씨의 계좌에서 나간뒤 해당은행으로 다시 되돌아온 수표·어음의 배서인을 찾아내는 것이다.
예금자료에 나타나 있는 발행번호를 열쇠로 은행창구에서 이미 결제된 수표·어음을 찾아내 배서인을 일일이 확인하는 방법이다.
다음으로는 조씨가 발행한 수표·어음이 통과한 금융기관을 찾아가 누가 해당수표·어음을 받았는지 꼼꼼히 역추적하는 방법도 염두에 넣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추적은 법사위로부터 자료제출을 요구받은 금융기관이 순순히 자료를 넘겨줄 것이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되고서야 가능한 것이다.
만일 금융기관이 거래자에 대해 더욱 철저한 보호를 규정한 긴급명령·시행령을 내세워 자료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문제는 달라진다.
법사위와 민주당측은 긴급명령 4조(비밀보장조항) 1항의 단서조항을 들어 금융기관이 국감조법에 의한 자료요구를 거절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국정조사활동·결과는 불특정 다수인에게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이 법률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법사위와 민주당측은 또 금융기관이 자료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검찰에 고발할 수 있으므로 금융기관이 함부로 거절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낙관한다.
계좌추적과 관련한 금융기관의 입장은 아직 명백히 나타나 있지 않다.
그렇지만 『설사 고발당하더라도 예금자 보호를 명시한 긴급명령과 시행령 규정을 철저히 지키려는 노력이 입증될 경우 검찰에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국회의 자료제출요구 계획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금융기관도 없지 않다.
또 홍재형 재무장관도 국회에서 『신법(실명제)이 구법에 우선한다』며 긴급명령이 국감조법에 우선한다는 내용의 말을 한 적도 있다.
결국 계좌추적을 둘러싼 논란발생소지가 충분히 있는 셈인데 법사위 소속의 한 민자당 의원은 『계좌추적 결정은 여야가 증인·참고인 채택과 관련한 줄다리기끝에 정치적으로 타협해 이뤄진 하나의 편법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인 만큼 금융기관이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를 거절할 경우 대논쟁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회가 자료제출을 거부한 금융기관을 고발할 경우 공은 검찰에 넘어가고 국정조사의 초점은 흐려지므로 사실상 국정조사가 무산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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