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 ‘그 때 그사람들’ 디지털 세대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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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7세이던 1976년에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함미(왼쪽 앞)씨가 14일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문화 행사에 참가해 배보원(고3·앞줄 왼쪽 둘째)양을 비롯한 세명컴퓨터고 학생들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60~70년대 어려웠던 시절 묵묵히 ‘한강의 기적’을 이룬 산업화 세대와, IT 강국 한국의 미래를 이끌고 나갈 정보화 세대가 만났다.

14일 오전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옛 구로공단) 내 한국산업단지공단(KICOX) 건물 옥상에서 과거 공단 근로자 20여 명과 세명컴퓨터고 학생 100여 명이 30~40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구로구(구청장 양대웅)가 ‘구로에서 미래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16일까지 여는 문화축제의 일환으로 마련한 자리에서다.

 17세였던 1976년 고향인 전남 목포를 떠나 친구의 소개로 보따리 하나 달랑 싸들고 구로공단을 찾아 온 함미(48)씨. 당시 전구·형광등을 만드는 풍우실업이란 회사에 취직한 그는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하루 12시간씩 일했다”고 회고했다. “공장에선 유리를 녹이려고 하루 종일 가스불을 켜 놨어요. 여름엔 내부 온도가 40도를 넘었을 거예요. 땀을 비 오듯 흘렸지만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었어요. 깜빡 졸다 손을 다쳐 고생하던 동료도 많았죠.”

서봉석(57)씨는 68년 고향인 경북 상주에서 농사를 짓다 상경해 구로공단에 왔다. 67년 4월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해 1단지 준공식을 하고 구로공단이 정식으로 출범한 이듬해였다. 당시 18세였던 서씨는 TV를 조립해 수출하는 동남전기란 회사에 들어갔다.

그는 “공장 굴뚝에선 하루 종일 시커먼 매연이 쏟아져 나와 숨을 제대로 못 쉴 정도였죠. 월세 2000원짜리 쪽방에서 친구랑 자취했는데 다리를 편하게 뻗지 못할 정도로 좁았어요.”

 서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사정이 어려워 고교를 못 갔다. 일하면서 대입 검정고시도 합격하고 영어학원에도 다녔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에겐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만큼 열심히 노력해 구로디지털단지를 미국 실리콘 밸리 같은 명소로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함씨와 서씨의 이야기를 들은 고교생들은 놀라워하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3학년 배보영(18)양은 “지금은 현대식 건물에 벤처기업이 입주한 첨단 산업단지인데 예전엔 그렇게 열악한 환경이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만일 나보고 그런 공장에 나가라고 했다면 못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1학년 정두환(17)군은 “예전에 일하던 분들은 매우 힘들게 사셨던 것을 알게 됐다”며 “장래 희망이 게임 프로그래머인데 오늘 들은 말씀을 가슴에 잘 새겨 둬야 할 것 같다”고 소감을 털어놨다. 

주정완 기자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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