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좋았던 옛날」 생각만 하나(긴급점검/공무원 복지부동: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일벌이면 손해” 다칠까 보신급급/“잇단 사정에 위축된 것뿐” 항변도
공직사회를 두고 말들이 많다. 「복지부동」이니,「복지안동」이니 새정부 들어 잔뜩 움츠러는 공직사회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시각은 매우 부정적이다. 공무원들은 공무원들대로 공직사회에 대한 이같은 시각이 못마땅하다. 그러나 공직사회의 분발과 선도없인 개혁의 성공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위축된 공직사회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처방은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공직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그 실태,그리고 원인과 대책을 시리즈로 조명해본다.<편집자주>
지난해 가을이후 공직사회에 관한한 가장 인기있는(?) 유행어는 「복지부동」이다. 이 말은 원래 적기의 공습으로부터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말라」는 뜻의 군사용어다.
이 말이 강한 사정바람에 날아가지 않기 위해 잔뜩 몸을 움츠린 공직사회를 희화화하는 표현으로 사용되며 전염병 퍼지듯 공직사회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공직사회를 거론하면서 이를 들먹이지 않고는 얘기가 안될 만큼 되었다.
공무원들은 이말 자치에 노골적인 반감을 나타낸다.
『복지부동이라고요,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공무원들은 엎드려 있지도 않거니와 움직이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당치도 않은 말을 만들어내 일이 터질 때마다 복지부동으로 몰아붙이니 정말 복지부동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자포자기성 발언까지 들린다.
그러나 복지부동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직사회가 과거에 비해 상당부분 위축되고 침체돼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신바람날게 없지 않습니까. 가뜩이나 민간기업에 비해 대우나 근무여건 등이 열악한데 공무원이 무슨 큰죄나 지은 것처럼 몰아대니 일할 맛이 나겠습니까.』
총무처의 한 중견과장은 전엔 동창회 등에 나가면 공직에 있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요즈음은 왜 공직을 택했는지 회의가 들때가 한 두번이 아니라며 그저 담담한 마음으로 업무를 대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공무원사회가 위축된 1차적인 원인은 문민정부들어 몰아친 강도높은 사정과 개혁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한 고위공무원은 과거의 잘못을 놓고 언제 어떠한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데다,기관장 등 상급자가 사정에 걸려들 경우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자연히 조직이 경색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계속된 감사와 사정활동으로 「일을 벌였다가 잘못되면 당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일을 적극적으로 하려는 사람이 줄고 있다고 20년 경력의 다른 공무원은 말한다.
업무추진과 수행단계에서부터 경직성이 초래되고 공직사회가 위축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행정과제 완화에 따른 각종 제한의 철폐로 공무원들이 재미(?)를 누릴 수 있었던 여지가 점점 줄어든 것도 큰 요인이라고 지적하는 공무원도 있다.
오석홍교수(서울대)는 『일종의 부패가 한때 업무추진의 윤활유 또는 동기로 작용했다』며 이제는 다른 동기부여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 민원처리 과정에서 편법이 줄고 법대로 하다보니 시민들에게 공무원들이 일을 안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고 이것이 복지부동으로 인식되기도 한다고 한 민원처리 공무원은 불평한다.
전에는 청탁 등으로 1주일 걸릴 일이 하루에 해결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으나 요즘엔 청탁도 없고 「법대로」 처리하다보니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복지부동으로 보는 것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한 고급공무원은 국제화·전문화로 대표되는 최근의 사회움직임과 관련,변신이 덜 자유스러운 공직자들이 불안해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의 공직사회 침체는 과거의 잘못된 공무원상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공직사회는 이제 제자리를 찾아가는 형국인데 한때 좋았던(?) 시절과 자꾸 비교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직사회가 위축되기 시작한 것은 5공 들어서 부터라고 봐야 한다. 3,4공 때만해도 필요에 따라 조직이나 기구를 늘리는 일이 다반사였고,공무원의 비공식적인 음성수입도 당연시되었다. 이제 과거이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동서 행정쇄신위원회 위원장은 『지금이야말로 어떠한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공직사회의 틀을 새로 짜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요컨대 공직사회는 처우개선 등 직업인으로서의 떳떳한 생활보장과 함께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위상정립을 도모해야 할 중대한 시점에 와 있다.<김진원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