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서 불만 쏟아낸 민자 고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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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당색깔론·지구당 부실 판정에 거침없이 “직언”/김 대통령 “원로들이 후진위해 길 열어줘야” 설득
문정수 민자당 사무총장은 9일 오후 기자들에게 『청와대 모임에서 부실지구당 정비문제가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신임 박범진대변인도 맞장구쳤다. 두사람은 이날 총재인 김영삼대통령이 당 고문들을 불러 베푼 칼국수 오찬에 배석했다.
그러나 청와대 오찬내용은 정반대였다. 고문들은 지구당 정비 등 당운영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한 참석자는 『김 대통령 면전에서 잠시 분위기가 어색할 정도로 그렇게 거침없이 얘기가 나오는 것은 전례없다』고 할 정도였다.
참석자는 김종필대표와 민관식·권익현·박용만·권오태·이병희·이종근·김정식고문,청와대에서 박관용 비서실장·이원종 정무수석이 배석했다.
박 고문은 『당이 우리를 반대한 강경 재야인사를 영입하면서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아 당의 색깔이 변한 것 아니냐는 시각을 다수 국민들이 갖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박 고문은 재야출신의 집권세력에 들어올 때는 「이념의 전향성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민주계 최고참인 박 고문은 지구당(서울 성동병)이 정비대상에 올라 있다.
같은 처지에 있는 김 고문(서울 성북갑)도 부실판정 기준에 불만을 꺼냈다. 그러자 김 대통령은 『당의 원로들이 후진을 위해 길을 열어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설득했다. 이에 박 고문은 『명예스럽게 용퇴하게 해주면 백번이라도 승복하는데 당 관계자들이 불명예스런 퇴진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민 고문이 거들었다. 『신문을 보고 나도 놀랐다. 원로에 대한 예우가 너무 소홀하다』고 했다.
문 총장이 『언론이 앞질러갔다』고 해명하자 민 고문이 『무슨 소리냐』며 문 총장이 민망할 정도로 제동을 걸었다고 참석했던 고문이 전했다.
결국 김 대통령은 『당의 일은 대표가 알아서 하라』고 지시했고,김 대표는 『불명예스럽게 처리하지 않겠다』고 했다.
청와대 주변에서 대통령에 대해 직언을 할 사람이 없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자주 나오고 있는 마당에 당고문들의 이같은 발언은 매우 이색적인 것이었다는 것이다. 또다른 관심은 김 대통령의 시국 인식.
김 대통령은 『대기업들의 설비투자가 늘어나고 경기가 회복세에 있다』고 설명했다. 또 『무역수지 적자폭이 늘어나지만 이는 시설재와 수출용 부품 등 자본재 수입이 늘고 있기 때문인데 연말이면 괜찮을 것』이라면서 『올해 성장률은 8% 정도로 예상되며 수출도 목표에 무난히 도달할 수 있다』고 하는 등 경제가 잘 풀리는데 기분좋아했다는 것. 한 참석자는 『국정의 난맥상을 일부에서 지적하지만 이와달리 김 대통령은 국정관리의 자신감을 보였으며 특히 경제문제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 것 같더라』고 전했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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