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아담&이브] 섹스, 카사노바가 다른 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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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대다수 여성은 자신의 얼굴이 행복에 겨워 발갛게 상기된다고 느낀다. 하지만 똑같은 순간, 상당수 남성은 파트너의 일그러진 얼굴, 고통스러운 얼굴을 지켜보며 쾌감을 얻는다.

오르가슴에 오른 여성의 얼굴. 다른 어떤 동물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인간만의 독특한 얼굴이다. 최근 뇌 과학의 발달로 ‘야누스의 얼굴’에 대한 비밀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촬영(f-MRI) 등의 각종 뇌 영상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쾌락을 느낄 때 뇌하수체와 뇌간에 있는 3만~4만 개의 신경세포에서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이 우수수 분비된다.

과학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도파민이 소음이나 전기 충격과도 같은 불쾌한 반응에서도 분비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적어도 쾌락과 고통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도파민이 어떤 행동이 끝나고 나서 분비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이 정점에 오르기 직전에 분비된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행복감이 어떤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마라톤에서 고통을 이기고 황홀경을 맛보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처럼 섹스에도 쾌락과 고통이 뒤섞여 있다. 여성의 오르가슴 역시 성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산물이라는 것 또한 명확해졌다.

그렇다면 남성은 ‘쾌락의 원칙’에 벗어나 있다는 말일까? 남성은 사정(射精)을 하고나서야 만족감을 느끼며, 남성 오르가슴은 그야말로 결과의 산물이 아닐까? 뇌 영상의학에 따르면 남성이 사정 후에 쾌락을 느끼지만, 도파민은 이미 사정 직전에 대량 분비된다. 그리고 짧지만 남성이 오르가슴을 느끼는 순간에도 얼굴이 묘하게 변한다.

하지만 여성은 뇌의 ‘쾌락 원칙’의 지배를 훨씬 많이 받는다.
성의학자들은 여성은 주변 환경과 육체적·정신적·정서적인 수많은 요인이 섹스 만족도를 결정하는 반면, 남성은 생리적인 요인에 전적으로 지배받기 때문에 ‘여성은 뇌로 섹스하고 남성은 성기로 섹스한다’고 설명해 왔다.

여성은 뇌로 성행위를 하기 때문에 ‘쾌락 원칙’에 따라 오르가슴 때 남성보다 훨씬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여성은 단순히 성감대를 자극받는다고 달궈지지 않는다. 여성은 뇌에 다양한 목소리가 울려야 야누스의 표정을 짓는다. 카사노바는 여성의 뇌를 달구는 다양한 속삭임을 잘 아는 남성이다.

이성주 코리아메디케어 대표

이성주씨는
 이성주씨는 건강의료포털 ‘코메디닷컴’의 대표이사다. 동아일보 의학 기자 출신이다.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보건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초빙연구원을 지냈다. 『황우석의 나라』 『대한민국 베스트닥터』 등 7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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