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을 생각하는 어버이날(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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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버이날에 자녀로부터 감사의 꽃 한송이라도 기쁘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행복한 사람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어버이날이 더욱 서러운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최근 생활보호대상자인 서울의 두 노인이 정부로부터 나오는 월 6만5천원의 생활보호급여가 기본적 생존권조차 보장해주지 못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헌법소원 청구를 한 사실이 보도된 적이 있다. 우리 사회의 노인복지수준이 어떠한지를 웅변해주는 단적인 보기였다.
물질만이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정신적인 면이 물질적인 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문제다.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물질적 수준이라면 어떠한 사랑이나 정신적 위안도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어버이날이 진정으로 뜻깊고 가치있는 날이 되려면 노인세대들이 최소한 생존권의 위협으로부터는 벗어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복지수준은 너무도 한심하다. 세계은행의 지난 90년도 통계를 보면 우리 정부의 GNP 대비 복지부문 지출은 선진국은 물론 중소득국·저소득국 평균보다도 크게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런 결과를 낳은 경제정책이 계속되는한 아무리 사회 전체적으론 발전을 해도 어버이날이 더욱 서러운 어버이들은 늘어만 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버이들은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갈수록 더 서러워지고 있다. 최극 각 지방단체가 어버이날을 앞두고 효자·효부를 찾으려 했으나 대상자를 찾기 힘들어 시상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시상계획을 폐지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보도된 적이 있다. 「동일가구에 사는 사람」을 그 기준의 하나로 했더니 그렇게 대상자가 없었던 것이다.
핵가족화·도시화·산업화는 당분간 피할 수 없는 추세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쯤에서 우리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과연 핵가족현상이 그렇게 바람직하기만 할 것일까를­.
누구도 늙음은 피할 수가 없다. 생계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그 다음으로 절박한 문제는 외로움의 해결일 것이다. 죽음이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면서 느끼게 되는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길은 가족과의 유대에서 밖에는 찾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핵가족화는 바로 누구나 겪게 되는 그 외로움을 해결할 수 없는 일로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지난날의 대가족제도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지만 핵가족화·도시화에 따르는 노년의 외로움이란 문제는 사회는 사회대로,각 가정은 가정대로 깊이 생각해봐야 할 과제다. 어버이날이 「꽃한송이」로 끝나는 날이 아니라 노년의 문제를 우리 모두가 함께 생각해보는 날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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