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민간 돈으로 취재 봉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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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기자가 담당하는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은 서울 여의도의 한 건물을 쓰고 있다. 금감위는 정부 조직이지만 금감원은 반관반민(半官半民) 성격의 무자본 특수법인이다. 8월까지는 기자실에 가려면 출입문에서 출입증을 제시해야 했다. 정부의 '취재 선진화 방안'이 시행된 이후에는 더 이상 출입증이 필요 없다. 곧바로 3층 기자실로 올라갈 수 있다. 기자뿐 아니라 잡상인이든 누구든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통로다.

자유로워진 것은 여기까지만이다. 3층에서 금감위나 금감원 사무실을 찾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출입이 통제되는 유리문을 통과해야 한다. 기자들의 사무실 출입을 막기 위해 새로 설치한 취재 장벽이다.

과연 취재 봉쇄에 쓰인 공사비는 어디서 나왔을까. 12일 금감원에 따르면 이번 기자실 공사에 들어간 비용 3000여만원은 금감원의 수선유지비에서 가져다 썼다. 금감원은 은행.증권사.보험사에서 감독분담금을 받아 운영된다. 결국 금융회사 돈으로 기자들의 취재를 막는 기자실 공사를 한 셈이다. 가뜩이나 금융회사들은 2003년 1240억원에서 2007년 1913억원으로 4년간 분담금이 54.3%나 늘어났다고 울상을 짓고 있다.

금감원이 내놓은 변명은 궁색하다. "건물이 우리 소유이고, 금감위는 월세를 내고 있다"며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것이니 우리(금감원)가 비용을 내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정부와 금감위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금감원의 현실적 입장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금감원이 독립성 확보를 위해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존재라는 사실을 스스로 부인하는 꼴이 된다.

다른 정부 기관들이 예비비를 지출해 기자실 공사를 강행한 것도 문제가 있다. 한나라당 정무위 국회의원들은 "(기자실 공사가) 취재를 제약하는 만큼 차기 정권에서 원상 복귀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선 향방에 따라 세금만 낭비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금감원의 취재통제 공사는 문제의 차원이 다르다. 반관반민이라는 의미가, 지시는 관(정부)이 내리고 돈은 민(금융회사)이 대는 꼴 사나운 모양이 돼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하기야 반관(半官)의 벼슬을 이용해 분담금을 더 내라며 금융회사들만 쥐어짜면 그만이겠지만….

안혜리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