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예멘의 경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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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5년 베트남의 통일에 이어 90년 독일과 예멘이 통일을 이룸에 따라 세계의 4개 분단국중 우리나라만이 최후의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게 됐다. 우리가 무력과 전쟁에 의한 통일의 가능성을 베재해온 만큼 베트남의 경우 보다는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한 독일과 예멘의 경우가 더 우리의 관심사일 수 밖에 없다.
그러한 두개의 평화통일 모델중 예멘이 남북 지도자들간의 정치적 대립과 양쪽의 문화적 차이를 해소하지 못해 재분단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소식이다.
독일과 예멘은 분단의 역사나 통일의 방법에서 많은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독일은 1870년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통일을 이룬후 1945년까지 같은 민족,한 나라로 유럽의 강대국이었다. 독일의 분단은 침략전쟁에서 패전한데 따른 타율적인 응징의 결과였다. 따라서 독일인들은 재통일의 열망을 지니고 있었고,냉전체제의 붕괴로 전후처리체제의 틀이 무너지자 자연스럽게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예멘은 기원전 시바왕국의 일부로 번영을 누렸으나 16세기 오스만 터키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그중 아든항을 중심으로한 남부 인도양 연안은 19세기 영국지배하에 들어갔다. 북예멘은 1918년 독립을 이룩했으나 남예멘은 196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별도의 식민지배하에서 통일성을 상실한 기간이 워낙 오래였기 때문에 예멘인의 통일열망은 독일인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두나라는 통일방법도 달랐다. 독일은 서독중심으로 동독이 서독에 완전히 흡수통일된데 비해 예멘은 양쪽의 세력을 인정한채 느슨하고 점진적인 통일의 길을 밟았다. 양쪽이 사실상 별도의 군대를 유지하고 인구가 많은 북쪽의 대통령과 남쪽의 부통령이 권력을 분점하는 느슨한 연정을 형성했다.
그러나 정치·경제·사회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채 가리워져 있을뿐 내연하는 취약한 구조였던 것이다. 그런 구조에선 자그마한 문제도 쉽게 발화점에 이를 수 있다. 바로 지금 그것이 내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 경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우리 정부는 독일식의 흡수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공헌하고 있다. 여야 모두 오히려 예멘식에 가까운 단계적 통일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물론 우리가 북한을 자극할 흡수통일을 고창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양쪽의 체제를 그대로 둔채 어정쩡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로 묶는 방식도 유효한 통일방안이 아님은 예멘의 예에서 분명해지고 있다.
특히 북한 핵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의 실력과 억지력을 기르면서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유효한 통일의 기회로 살릴 준비를 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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