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 감독이 이승엽의 발목을 고의로 밟은 시츠 선수에게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도쿄 교도통신=연합뉴스]
1루수 이승엽이 베이스 안쪽에 발을 대고 있었음에도 이를 밟고 지나간 것은 고의성이 짙었다. 하라 요미우리 감독이 이례적으로 그라운드에 달려 나와 시츠 선수와 오카다 한신 감독에게 격렬히 항의했지만 이승엽은 참고 넘어갔고, 심판도 시츠에게 아무 처벌 없이 경기를 속행시켰다.
하지만 이 장면을 지켜본 요미우리와 국내 팬들의 성난 목소리가 사흘째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요미우리 홈페이지 등에는 "오랜 세월 야구를 보고 있지만 이런 일은 처음" "난 한신 팬이지만 옹호할 수 없다" "시츠에게 퇴장 명령을 내리지 않은 1루심은 무능하다" 등 시츠의 몰상식한 플레이를 질타하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또 "이승엽은 너무 얌전하다. 사람이 좋다고나 할까" "한국인은 야만적인 이미지였는데 의외였다" "상대 1루수가 타이론 우즈(주니치)였으면 시츠는 맞아 죽었다"는 등 항의하지 않은 이승엽을 못마땅해 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에 대해 이승엽의 아버지 이춘광씨는 "그것이 승엽이의 참모습"이라고 말했다. 10일 아들과 전화통화를 통해 "별다른 부상은 없다"고 확인한 이씨는 "승엽이는 어릴 때부터 싸움을 싫어했다. 야구를 하면서 선배에게 맞아도 지독한 연습을 통해 그 선배를 넘어서는 것으로 복수했다"고 기억했다.
이승엽은 2003년 LG전에서 집단 몸싸움 도중 LG 투수 서승화와 주먹다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춘광씨는 "후배인 서승화가 선배(이승엽)의 멱살을 잡아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나갔다. 다시는 경기장에서 폭력을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던 아들의 말을 회상했다. 이씨는 또 "손자(은혁)가 두 돌을 갓 지나 사물을 분별할 줄 안다. 아들에게 싸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을 것"이라며 "어린이들 때문에 참았다"는 이승엽의 말을 뒷받침했다.
현장을 지켜본 김기태 요미우리 보조코치는 "국민타자로서의 자존심과 팀내 위상을 고려해 행동을 자제한 것"으로 보았다. 김 코치는 "하라 감독이 그처럼 독기를 내뿜는 모습은 처음 봤다"는 구단 관계자의 말을 전하면서 "다음 번 타석 때 이승엽에게 위협구나 사구가 날아들 것에 대비해 요미우리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뛰어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기요타케 요미우리 구단 대표도 시츠의 행동을 비난하며 구단 전체가 팀 중심인 이승엽을 위해 대리전을 벌이는 분위기다.
이충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