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원6처」와 전각료 해임안(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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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의 여야 정당들이 왜 이렇게 말귀가 어둡고 국민생각을 못 헤아리는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마치 장난처럼 보이는 정치가 나오는가 하면,누워 침뱉기식 억지윤리가 횡행하는 요즘 정치판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문제를 풀기는 커녕 더 어렵고 꼬이게만 하고 있다.
이회창씨의 총리 퇴임이후 그를 깎아내리는데 열중하고 있는 민자당은 중앙행정기관중 총리소속은 2원6처 뿐이므로 안보문제에 관한 이 전 총리의 발언은 월권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제시했다. 그런 말을 슬쩍 흘린 것도 아니고 정식으로 홍보자료로 배포했다니 민자당이 법해석을 그렇게 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 논리가 맞는 말인가. 그렇다면 총리가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는 헌법조항은 무엇인가. 굳이 헌법학자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일을 민자당이 억지로 궤변하는 것은 요컨대 이 전 총리를 깎아내리는데만 열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자당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여권이 되는 말,안되는 말을 총동원해 이씨를 비방하면 할수록 거꾸로 이씨에 대한 국민의 동정과 지지는 높아지고 여권 스스로는 궁지에 몰린다는 걸 알아야 한다. 어제까지 칭송하던 총리를 오늘은 매도하는 것이 자기분열적이고 임명권자를 욕보이는 일임을 왜 모르는가. 누워 침뱉기식의 이런 저질비방으로 이미 큰 손해를 보고 있음을 여권만 왜 모르는지 딱하다.
다음으로 야당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있다. 야당은 22명의 장관 전원에 대한 22건의 해임건의안을 제출함으로써 이 분야에 있어 신기록을 만들었다. 우리 헌법에는 국회의 내각불신임제가 없고 각료 개개인에 대한 해임건의제를 두고 있다. 따라서 야당의 개별 국무위원에 대한 무더기 해임건의안 발의가 법조문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에 맞다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러난 총리가 제청한 장관도 물러나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것이 국회의 해임건의 사유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후임총리의 제청으로 재임명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고,그것도 후임총리 임명이후의 일이다. 또 내각불신임제가 헌법에 없는데도 각료전원에 대한 개별적 해임건의안이라는 형태로 사실상 내각불신임을 발의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맞는가도 문제다.
결국 야당이 노리는건 정치공세인데 이런식의 정치가 국민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오히려 국회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정치권 전체를 비하시킬 뿐이다. 흔히 야당은 여당의 대안이라고 하는데 여권이 죽을 쑬때 야당이 사리에 맞게 생산적으로 나간다면 얼마나 돋보일까.
우리는 요즘 여야의 정치행태에서 보게되는 천박성·단견성·저질성을 개탄하면서 이제부터라도 문제를 풀어나가는 정치를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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