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노사관계 달라진다] 독일 재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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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전통적으로 노조의 경영 참여가 허용돼 온 독일에서 최근 종업원 경영참여 제도를 개혁하자는 주장이 거세게 일고 있다.

세계 3위의 독일 경제가 지난해 10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자 재계가 독일식 경영참여제인 '공동결정제'의 효율성을 문제삼기 시작한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지멘스.다임러크라이슬러 등 대표적인 독일 기업들이 '종업원의 경영참여로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기업 구조조정과 세계화도 방해하고 있다'며 개혁론을 들고 나왔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베를린의 '기업지배구조' 관련 세미나에서 만프레트 겐츠 다임러크라이슬러 재무책임자(CFO)는 "좋은 기업 지배구조와 독일의 공동결정제는 거의 양립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지멘스의 하인츠 요하힘 노이뷔르거 CFO도 이날 "그동안은 금기였던 공동결정제 개혁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독일은 1976년 일종의 사회적 합의로 '공동결정(미트베슈티뭉)법'을 제정, 종업원 2천명 이상의 기업은 경영이사회를 견제할 감독이사회의 설치를 의무화했다. 감독이사회 이사진의 최고 50%는 노조가 배정하도록 했다. 회사의 장기 전략이나 기업인수.합병, 구조조정 등 경영의 중요 의사결정 과정에 노조의 참여를 제도화한 것이다.

이후 노조의 세력이 강한 독일에서 재계가 공동결정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노조와의 정면충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금기시돼 왔다. 하지만 독일 경제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지난해 재계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독일 재계 수장인 미하엘 로고프스키 산업연맹(BDI) 회장은 "공동결정제는 관료주의적 괴물"이라며 포문을 연 것이다.

롤프 브로이어 전 도이체방크 회장도 "공동결정제는 이미 낡은 제도로 독일의 국제적 입지에 타격을 준다"고 말했다. 게르하르트 크로메 독일 기업지배위원회 의장도 "공동결정제 자체를 폐지할 순 없지만 대폭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디트마르 헥셀 독일노조총연맹(DGB)이사는 "공동결정제가 일부 기업의 불평과 달리 실제로는 기업의 구조조정과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반박하면서 "사민당 정권이 공동결정법을 수정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 독일 경제는 1993년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0.1% 성장을 기록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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