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반전, 소설 읽기의 묘미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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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케 마리코의 소설은 읽을수록 매력이 있다. 특히 짧은 단편 안에 밀도 있게 이야기를 풀어놓는 솜씨는 탁월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다. 그녀는 몇 년 전 《아내의 여자 친구》라는 단편선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지만 일본 문단에서는 매우 비중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이번에 출간된 《소문》은 생각지 못한 재앙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간 심리를 아찔할 정도로 잘 묘사한 단편 모음집으로 각각의 작품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반전이 특히 흥미롭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이 바로 그 일상이 자신을 옭죄는 상황을 맞으면서 내면에 감추어져 있던 범죄 심리가 자기도 모르게 촉발되는 모습을 담담하게 펼쳐가다가 어느새 오싹한 결말을 맞게 되는 마무리가 절묘하다.

여름의 끝자락을 장식할 만한 서늘한 소설

표제작 <소문>은 세상에 약삭빠르게 적응하지 못하고 운명에 순응하는 우직하고 순진한 여자의 이야기다. 간병을 맡았던 노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동네에서 따돌림을 당하다 자신의 셋방을 엿보던 이웃 아파트에 사는 대학생과 친해지면서 그 우직함이 왜곡된 모습으로 변해가는 한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

<팽이 멈추기>에서는 동화 작가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주인공을 등장시켜 평범한 인간의 내면에 숨어 있는 아집과 왜곡된 인격,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 숨어 있는 조용한 공포를 묘사하고 있다.

<재앙을 부르는 개>는 한마디로 공포소설의 범주에 들어가는 이야기다. 젊어서부터 남달리 개를 좋아했던 주인공이 거품 경제의 위기를 맞아 정리해고의 불안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서 초등학생 딸이 주워온 낯선 개에게 모든 불행의 원인을 돌리고 집착하다 더 큰 불행을 맞이한다는 이야기다.

<쓰르라미 동산의 여주인>은 관능과 탐미에 천착하는 작가의 개성이 돋보이는 전형적인 작품이다. 드넓은 저택에 은둔하듯 살면서 은밀한 방탕을 즐기는 재벌가의 외동딸을 우연히 알게 된 무명 배우가 그녀의 교묘한 덫에 걸려 서서히 나락으로 추락하는 내용이다.

고이케의 마리코의 작품에는 살인이라는 비일상적인 범죄가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그런데 그 무시무시한 범죄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독자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야기 속의 살인을 은근히 이해하고 납득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이야기 중반까지의 흐름으로 보아 결코 살인으로까지 발전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지만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극적인 반전과 함께 누군가가 죽곤 한다. 여름의 끝자락, 마지막 남은 더위를 날려버릴 만한 오싹한 작품이다.

조인스닷컴(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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