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산책] 주연보다 멋진 공연 꿈꾸는 후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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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 공연을 보러가서 공연 정보를 알려주는 잡지 '플레이빌'을 받았을 때 그 안에 하얀 메모지가 끼워져 있으면 가슴이 철렁한다. 주연 대신 '언더스터디'가 출연한다는 공지이기 때문이다.

배우도 사람이다 보니 질병이나 천재지변. 휴가 등으로 출연하지 못하면 이를 대신하는 배우가 '언더스터디(understudy)'다. 미리 예매해 놓은 관객 입장에서는 제 돈 다 내고도 정작 보고 싶은 배우를 보지 못하면 화가 나게 마련이다.

현재 휴 잭먼 주연의 뮤지컬 '보이 프롬 오즈(Boy from Oz)'는 아예 언더스터디를 두지 않고 있다. 그가 쉬는 날은 공연이 없다. 휴 잭먼 하나 때문에 극장에 오는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제작자의 의도다.

언더스터디는 단순한 대타가 아니다. 영화 '브로드웨이를 쏴라'에서 보듯 주연보다 훨씬 나은 언더스터디도 있다. 그들은 코러스도, 더블 캐스트도 아니며 주연 배우가 서지 않는 날만 조명을 받는다. 뮤지컬 '속속들이 현대적인 밀리'의 주연배우 서튼 포스터도 트라이아웃 공연의 언더스터디였지만 결국 브로드웨이 무대에서는 주연 자리를 꿰차 토니상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스타를 전면에 내세운 공연은 언더스터디가 아무리 잘해도 관객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버나뎃 피터스가 아파서 뮤지컬 '집시'의 공연 초반에 여러 번 결석하자 예매율이 급감했다. 연극 '뜨거운 앙철지붕 위의 고양이'에서 애쉴리 주드가 주기적으로 빠졌던 낮 공연도 표가 남아돌았다.

여기서 보듯 비록 감기에 걸려 목이 쉴지언정 스타가 나와주기를 바라는 잔인한 사람들이 바로 관객이다. 그러나 막상 스타라 해도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면 냉혹하게 돌아서는 사람들도 그들이다. 이런 순간이 바로 언더스터디가 돋보일 기회다.

유명 배우가 출연한 공연을 보고 실망스러웠다면 언더스터디, 혹은 무명의 더블 캐스트가 출연하는 날을 기다려 다시 한번 시도해보는 것도 노련한 관객의 몫이다. 리바이벌 '시카고'의 록시 하트였던 앤 라인킹도 뮤지컬 '피핀'에서 캐서린 역의 언더스터디였고 영화배우 다이앤 키튼도 뮤지컬 '헤어'에서 쉐일라 역의 언더스터디 출신이다. 브로드웨이의 알려지지 않은 언더스터디들은 먼 훗날 제2의 앤 라인킹과 다이앤 키튼을 꿈꾸며 오늘도 무대에서 열정을 퍼붓고 있다. <끝>

뮤지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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