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해빙」이끈 영욕의 정치인/타계한 닉슨 전 미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주유소집 아들서 백악관 주인까지 집념의 삶/중국과 수교·월남전 종결·무기감축등 큰족적/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첫 도중하차 불명예도
22일 타계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50년대의 냉전시대를 넘어 「해빙」을 주도했던 세계적인 정치지도자이자 불법도청사건으로 재임중 사임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영욕을 함께 했다.
닉슨은 제37대 미 대통령으로 69년 1월부터 5년 2백1일에 걸쳐 세계 최강국의 지도자로서 사회주의 중국과의 20여년에 걸친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외교관계를 열었으며,소련과 전략무기감축협정을 체결,해빙시대를 이끌었다. 미국사회를 상처투성이로 만들며 국론을 분열시켰던 베트남전 개입을 종결지은 것도 그였다.
닉슨은 명민한 두뇌와 각고의 노력,불굴의 의지,그리고 두드러진 외교적 안목과 정치수완으로 백악관의 주인공이 되었으나,「트리키 딕」(교활한 리처드라는 뜻)이라는 별명이 보여주듯 권모술수와 남에 대한 불신으로 파멸로 굴러떨어지는 인간적 약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닉슨은 1913년 캘리포니아주 요바 린다에서 가난한 주유소 주인의 5형제중 둘째로 태어났다. 연방수사국(FBI) 수사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1934년 장학생으로 듀크대 법대에 장학하면서 정치에 눈을 떴다.
졸업후 고향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던 그는 46년 전후 첫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인 그는 당시 미국을 뒤흔들던 매카시선풍의 선봉중 한 사람으로 명성을 닦아 50년 상원에 진출했고,52년엔 39세의 나이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야심만만한 그는 60년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나섰으나 처음으로 선거전에 등장했던 TV토론에서의 열세로 케네디에게 근소한 차로 패배,첫 좌절을 겪었다. 이후 캘리포니아 주지사선거에서도 낙선,재기가 어려운듯 보였으나 68년 우파의 지지로 37대 대통령에 당선,재기에 성공하는 집념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어 72∼74년까지 민주당의 조지 맥거번 후보에 압승,재선된뒤 워터게이트로 사임에 올리며 절정기에서 극적으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72년 6월 국가안보를 핑계로 민주당 선거본부에 침입,도청을 시도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닉슨은 도덕성에 치명적 상처를 입고 의회의 탄핵에 직면한 끝에 74년 8월9일 미 대통령중 최초로 임기도중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같은 충격속에 5년 이상 캘리포니아 산 클라멘트에서 실질적 망명생활을 했던 그는 그러나 이후 10차례 모스크바를,다섯차례 북경을 방문하는 등 원로지도자로서 정력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며 회고록을 포함한 여덟권의 책을 남겼다.<곽한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